에버랜드 CB 사건은 1996년 시작됐다. 그 해 12월 에버랜드 이사회는 기존 주주가 취득을 포기한 전환사채 125만4000주를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 등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의 자녀들에게 배정할 것을 결의했다.

이에 따라 이 전무와 이부진 신라호텔 전무,이서현 제일모직 상무 등은 주당 7700원의 가격에 CB를 의결권이 있는 일반주식으로 전환했다. 이 전무는 CB 전환으로 전체 에버랜드 지분의 25.1%를 갖게 됐다.

재계에서는 삼성이 경영권 승계를 위해 정상적인 주식 증여 대신 CB 발행이라는 카드를 선택한 것은 현실적인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현재 한국의 상속 · 증여세율(30억원 이상 증여시)은 최대 50%에 이른다. 대기업 오너가 지배주주의 지위를 상속할 경우 주식 평가액의 30%가 추가로 할증돼 총 65%에 달하는 상속세를 물어야 한다. 제대로 세금을 낼 경우 지분의 절반 이상이 사라진다.

이 같은 상황은 에버랜드 CB 발행이 이뤄졌던 1996년에도 엇비슷했다. 당시의 상속 · 증여세율은 지금보다 10% 낮은 40%였다. 여기에다 당시 세법은 CB 발행을 통한 경영권 승계에 대해 어떠한 규정도 마련하지 않고 있었다. 합법과 불법을 따질만한 법적 근거가 없었단 얘기다.

재계 관계자는 "일반인들의 정서적 거부감이 부담스러웠겠지만 당시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에버랜드 CB 발행이 불법 내지는 편법 증여라는 여론이 일자 법학교수 43명은 2000년 6월 이 전 회장 등 33명을 대상으로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주식의 가치가 주당 8만5000원에 달함에도 불구,7700원의 낮은 가격을 책정해 회사에 손해를 입혔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었다.

사건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 것은 2007년.삼성에서 법무팀장을 맡았던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그룹 차명계좌 비자금 문제를 폭로한 것.이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삼성특검이 꾸려졌다. 특검은 에버랜드 CB 사건뿐 아니라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헐값 발행,이 전 회장의 양도소득세 포탈 혐의 등에 대해 기소가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특검 사건을 심리한 법원은 1,2심에서 에버랜드 사건에 대해 무죄선고를 내렸다. 1심 재판부는 "7700원의 발행가격이 낮다는 근거가 없고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고 볼 수도 없다"고 설명했다. 이 전 회장의 경영권 승계에 법적 하자가 없었다는 게 결론이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