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는 속담처럼 와인 맛을 조금 알면 누구나 좋은 와인을 마시고 싶다.

그러나 막상 고급 와인을 마시면서도 '부드럽다''향이 좋다' 외에는 구체적으로 무엇이,왜 좋은지를 명확히 설명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문제는 좋은 와인에 대한 기준이 없는 것이다.

제일 간편하고 이해하기 쉬운 기준은 '가격'이다. 비싸면 좋은 와인일 확률이 매우 높다. 그러나 비싸다고 모두 좋은 와인이라고 속단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와인 가격은 경기상황은 물론,와인의 희소성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공급이 제한된 상황에서 중국 인도 같은 신흥국에서 수요가 급격히 늘면 와인 가격은 요동친다. 일부 컬트와인처럼 투기적인 목적까지 끼어들어 실제 가치보다 과대평가된 경우도 많다. 여기에 생산자의 전략이나 거품도 들어 있다.

또 다른 좋은 와인의 기준은 미국의 와인전문지 '와인 스펙테이터'나 로버트 파커(사진) 같은 세계적인 와인전문가들이 평가한 높은 점수다. 이런 실용적인 발상은 1976년 '파리의 심판' 이래 와인의 감정평가 주도권 경쟁에서 미국인들에게 또 한번의 승리를 안겨주었다.

와인 생산과 소비가 가장 활발한 유럽의 많은 와인전문가들은 '테이스팅 노트'(Tasting Note)를 중심으로 소비자들과 소통했다. 색과 질감이 어떻고 산도 · 타닌 · 당도 · 알코올농도가 높고 낮으며 무슨 향이 강하다는 식의 설명 위주다.

그러나 복잡하고 긴 설명보다 100점 만점에 몇 점으로 꼭 집어 표시하는 숫자의 위력은 정말 대단하다. 중견 와이너리 한둘쯤 망하게 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이들 때문에 신대륙의 와인 맛들이 모두 비슷해지는 문제점도 있다. 소비자는 점수로 기억되는 편리성에 열광한다. 마지막 기준으로는 일본 만화에 등장했던 것이나 각종 신문 잡지에서 추천한 와인들이다. 하지만 이들을 전적으로 신뢰하기에는 객관성이 부족하며,특히 수입상들의 입김이 들어간 것이 많다.

와인을 마시는 사람의 유형은 크게 네 가지로 분류된다. 첫째 '맛'으로,둘째 '멋'으로,셋째는 '척'으로,그리고 마지막은 '술'로 마신다. 시작은 '맛'으로 마시다가 '술'로 끝내는 경우도 많으며,'맛과 술' 또는 '멋과 술'로 마시는 복합형도 있다. 그러나 와인을 원샷으로 마셔대는 사람은 분명 '술'로만 마시는 전형이며,와인과 위스키를 섞는 드라큘라주를 만들면서 최고급 보르도 와인에 최고급 스카치 위스키를 찾는 사람은 '척과 술'로 마시는 유형임에 틀림없다.

오로지 '술'로만 마시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블리스(BLICE)'를 기준으로 평가하면 제법 와인 고수답게 맥을 놓치지 않고 좋은 와인을 찾을 수 있다. '블리스'는 영어로 균형감(Balanced),긴 잔향(Long Finish),향의 강도(Intensity of Flavor),향의 복합성(Complexity of Flavor) 및 품종특성의 표현성(Expressiveness of Varietal Character)의 머리글자를 딴 합성어다.

와인에는 알코올과 산도 · 당도 · 타닌 등 맛의 구성요소를 비롯해 여러 종류의 향 인자가 들어있다. 좋은 와인은 이들이 서로 조화롭게 균형을 이뤄 전체적으로 느낌이 부드러운 것이다. 특별히 어느 하나가 튀지 않는 소위 밸런스가 잘 맞는 와인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라운드(round)하다고 표현한다. 다만 품종에 따라 질감 자체가 부드러울 수는 있다.

좋은 와인의 또 다른 특징은 마신 후 잔향이 입안에 오래 남는 것이다. 질이 떨어지는 와인들은 대개 잔향이 아주 짧거나 거의 없다. 또한 향이 약한 것도 좋은 와인이라고 볼 수 없다. 그렇다고 단순히 한두 가지 향만 강한 것은 좋은 와인이기에 2% 부족하다. 와인 향에는 과일이나 꽃향처럼 포도품종에서 전해지는 원초적 향과 바닐라나 커피같이 오크통 숙성과정에서 더해지는 것들이 있다. 정말 좋은 와인은 이런 다양한 향이 복합된 오묘한 향이 코끝에서 솔솔 풍기는 것이다.

마지막 조건은 포도 품종의 특성이 잘 표현된 것이다. 좋은 보르도 와인이라면 카베르네 소비뇽의 특징대로 질감이 무겁고 타닌이 풍부하며,잘 익은 검은 과일과 오크향이 복합돼 감미로운 향이 많은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다양한 품종을 블렌딩한 와인이 많아 일률적으로 평가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현실적으로 모든 기준에 부합되는 와인들이 없지는 않지만,아주 비싸고 유명한 와인이 대부분이다.

최상의 와인은 쉽게 알 수 있다. 또한 평균 수준보다 많이 처지는 와인의 구별도 어렵지 않다. 우리의 목적은 한정된 예산 내에서 숨은 보석을 찾는 일이다. 따라서 완벽한 와인보다는 개인별로 선호하는 몇 가지 항목을 중심으로 우수한 와인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때 블리스를 기준으로 삼으면 많은 도움이 된다.

최승우 와인 칼럼니스트 · 여유공간 대표 sowhatcho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