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투신 서거로 '패닉 상태'에 빠진 대검찰청 간부들은 24일에도 전원 출근해 비상대책회의를 열었다. 정치권과 여론 일각에서 '검찰 책임론'까지 대두되고 있어 무척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법조계에서는 중수부 수사라인의 전원 교체설과 임채진 검찰총장의 책임론까지 대두되고 있다. 한 검찰 관계자는"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이대로 있을 수 있겠느냐.검찰의 잘잘못을 떠나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할 것 같다"며 "수사 지휘라인이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특히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 방식이 여론의 도마에 오르면서 무척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측근과 가족,친인척 전부를 전방위로 압박하는 저인망식 수사와 확정되지 않은 혐의 사실이 언론에 중계되는 상황이 노 전 대통령에게 견디기 힘든 모멸감을 안겨줬고,결과적으로 자살로 이어졌다는 시각 때문이다.


◆이례적인 수사

검찰은 박연차 게이트 수사 과정에서 항상 "있는 건 있고 없는 건 없다고 하겠다"를 강조했다. 이 원칙은 다른 피의자나 피내사자들에게는 대체로 지켜졌지만 유독 노 전 대통령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검찰은 우선 '600만달러+α'가 노 전 대통령으로 흘러갔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그의 주변을 샅샅이 뒤지는 저인망식 수사를 펼쳤다. 물론 뇌물 수수나 횡령,배임 등 경제범죄를 다루는 특수수사나 대형 사건은 주변 인물에 대한 광범위한 수사와 물적 증거 수집이 필수적이다. 혐의 사실을 대체로 부인하게 마련인 피의자와 흔적이 잘 드러나지 않는 돈거래를 찾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번 수사는 양상이 조금 달랐다. 태광실업의 탈세 고발사건과 세종증권 매각 비리로 작년 11월부터 본격 시작된 수사는 노건평씨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이광재 의원,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등 등 노 전 대통령의 가족과 정치적 · 경제적 동반자들을 줄줄이 구속해 노 전 대통령에게 정치적 치명상을 안겼다. 검찰은 이어 노 전 대통령의 아들 딸 부인 사위 등을 여러차례 소환조사했지만 '참고인'이라고 선을 긋고 오로지 노 전 대통령만을 겨냥해 수사를 진행했다. 즉 100만달러와 500만달러 등의 종착지가 완전히 규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노 전 대통령 가족에게 '참고인' 신분을 부여하는 일종의 '사법적 거래'를 통해 노 전 대통령을 우회적으로 압박하는 이례적인 수사 행태였다.


◆무리한 수사 지적도

노 전 대통령의 소환조사 뒤 구속영장 청구와 불구속기소를 저울질하면서 시간을 끈 것이 결과적으로 노 전 대통령의 심리를 더욱 압박했다는 시각도 있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속전속결로 끝냈어야 하는데 (노 전 대통령이 받았다는) 확실한 물증을 수사팀에서 확보하지 못했던 것 같다"며 "공개적인 망신주기 수사가 끊임없이 이어지며 이런 결과를 빚은 것 같아 착잡하다"고 말했다. 재판에 들어가 유무죄를 따지기도 전에 확정되지 않은 피의 사실을 흘려 전직 대통령을 '파렴치범'으로 낙인찍고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간 것이 비극을 불러 온 한 요인일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또 검찰 내 대표적인 강성파로 꾸며진 대검 중수부가 이런 결과를 초래하는 데 한몫했다는 시각도 있다. 한 검찰 관계자는 "수사란 것은 속도와 범위를 조절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의 중수부 팀은 너무 강하기만 했다"며 "누군가 제어를 해줬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