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식은 죄악이다. ' 건축이나 인테리어 디자인에서 과잉장식을 극도로 경계했던 오스트리아의 건축가 아돌프로스가 1908년에 했던 선언이다. 이후 당시 장식을 즐겼던 아르누보풍의 건축사조에 큰 변화가 생겼다. 건물의 외형,조명,가구 등의 설계에서 실용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바뀌는 계기가 됐다.

독일의 세계적인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도 장식의 절제를 특별히 강조했다. 불필요한 꾸밈보다는 공간의 섬세한 디테일을 통해 효용성과 미감을 살리는 건축디자인으로 유명한 건축가다. 그의 건축 작품들은 지금도 많은 공간디자이너들의 지침이 되고 있다. 미니멀하지만 감동이 있는 공간연출의 상징으로 평가되고 있다.

경기도 용인의 '하이브리드 하우스'도 근대 실용디자인의 흐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설계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아담한 주택이다. 건물 안팎의 모양새가 지나치리만큼 단순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요즘 유행하는 다양하면서도 아기자기한 장식을 적극 활용하는 프로방스 스타일,젠 스타일,퓨전 스타일 등의 디자인 트렌드와는 아예 담을 쌓은 것 같다. 공간의 실용성에만 충실한 수다스럽지 않은 작품이다.

하이브리드 하우스의 주인은 예술가다. 집주인은 거주와 작품 활동을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을 필요로 했다. 특히 주택과 실내공간이 작품 준비에 방해가 되는 것을 원치않았다. 집이 지나치게 화려하거나 공간구조가 복잡하면 작품활동에 몰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설계자는 이 집의 특성을 쉼,사색,작업,주거라는 테마가 분명히 드러나도록 하는 데 신경을 썼다. 특히 각자의 공간에서는 꼭 필요한 가구와 마감을 빼고는 일체의 꾸밈을 배제했다. 이로써 하이브리드 하우스에서 네 가지 키워드는 건물 외관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형태는 기능에 따른다'는 미국의 세계적인 건축가 루이스 설리반의 철학이 연상되는 집으로 만들어졌다.

실내 공간에도 일체의 장식이 생략됐다. 거실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게 박공 지붕을 그대로 드러낸 천정이다. 구조물 자체가 실내 인테리어 기능을 하는 셈이다. 도배 등 최소한의 마감도 없다. 부엌에는 간단한 아일랜드형 테이블과그릇 식자재 등을 놓을 수 있는 선반이 전부다.

이 집에서 장식 절제는 가구와 마감재에서 그치지 않는다. 거실 침실 부엌 작업실 등의 개별공간도 위세 부리듯한 자세로 배치돼있지 않다. 동선에 따라 자리잡고는 있지만, 여유공간을 극도로 줄여서 겸손하게 놓여있다. 공간 손실도 최대한 줄이고 필요한 만큼만 쓰겠다는 경제적 구성인 셈이다.

다양한 디자인에 편의성과 환경친화 · 건강친화 등을 내세우는 각종 마감재 홍수 속에서 이를 철저히 배제하고 지어진 용인 하이브리드 하우스는 요즘 구경하기 힘든 이색적인 주택이다. 절제와 비우기를 통해서도 맛깔스런 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우리 전통주택의 멋과 맛이 느껴지기도 하는 집이다.

장순각 교수 (한양대학교 실내환경디자인학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