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부동산 텔레마케터들의 임금 체불 민원이 전국적으로 급증하는 가운데 서울 강남지방노동청만 이들을 근로자로 판단해 체당금(체불 임금 대신 지원해주는 돈)을 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국민의 세금이 엉뚱한 곳으로 새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탕식 기획부동산이 활개를 친 후 사라지고 나면 정부가 남은 직원들에게 월급을 지급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최근 3년여간 지급한 돈만 118억원에 이른다. 이 때문에 기획부동산들이 강남권으로 몰려드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텔레마케터는 강남에서만 근로자

21일 노동부 등에 따르면 서울 중앙지방검찰청은 지난달 말 기획부동산 텔레마케터를 근로자로 판단한다는 내용의 수사지휘를 강남지방노동청에 내렸다. 통상 근로기준법 위반 사례를 지방노동청이 접수하면 관할 지방검찰청에서 이를 검토해 수사지휘를 내린다. 강남지방노동청이 이들의 임금 체불 진정서를 접수하자 이들을 근로자로 봐야 하느냐,성공보수를 받는 개인사업자로 봐야 되느냐를 중앙지검에 문의했고,중앙지검에서 이들을 근로자로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기획부동산 텔레마케터를 근로자로 판단한 경우는 강남이 유일하다. 지난해 하순 동부지검(동부지방노동청),남부지검(관악지방노동청) 등에서도 진정을 접수했지만 '근로자가 아니다'며 이를 기각했다. 이후 부산지검,광주지검,북부지검,인천지검 등 전국에서 잇따라 기획부동산 텔레마케터들의 임금 체불 진정을 접수했지만 모두 기각했다. 하지만 유독 서울중앙지검은 20000년대 초반부터 기획부동산 텔레마케터를 노동자로 판단해 체불 임금 진정서를 접수하고 있다. 최근 수사지휘도 이를 재확인한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2000년대 들어 생긴 직종이다 보니 대법원 판례도 없고 결국 각 지방검찰청에서 독립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임금체불 신고 최다,판단은 제각각

기획부동산은 수백명의 텔레마케터들을 고용한 후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투자가치가 높은 땅이 있다"며 토지를 판매하는 업체들로 2000년대 들어 급증하고 있다. 하지만 허위 · 과장 광고 등을 통해 땅값을 부풀려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가 상당수다. 이들은 6개월가량 사무실을 임대해 집중적으로 영업한 후 폐업 신고를 한다. 기획부동산 텔레마케터들은 대개 6개월 단위로 해고되기 때문에 최근 각 지방노동청의 임금 체불 민원 최다 사례로 꼽히고 있다. 체당금은 6개월만 사업을 유지하면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강남지방노동청이 민원을 접수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기획부동산 업체들은 강남으로 몰려들고 있다. 이 때문에 강남지방노동청은 이들을 처리하는 데 행정력을 소모하고 있다. 강남지방노동청 관계자는 "지방노동청의 근로감독과는 1~2개 수준인 데 비해 강남지방노동청은 4과까지 있다"며 "하지만 1개과는 사실상 기획부동산 텔레마케터들을 전담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기획부동산이 한탕하고 빠지면 소속 텔레마케터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체당금을 신청하고 있다"며 "다른 곳에 있던 기획부동산 업체들까지 문닫기 전에 강남으로 이사온다는 얘기가 있다"고 말했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