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의 '존엄사' 허용 판결에 따라 의료계가 시행 지침 마련에 나서고 있다. 그렇지만 실정법에 존엄사를 규정하는 등 존엄사의 제도화 작업은 국민적 공감대가 필요한 만큼 숱한 논의를 거쳐야 할 전망이다.

의료계에서는 서울대병원이 '말기 암환자의 심폐소생술 및 연명치료 여부에 대한 사전의료지시서'를 최근 통과시킴으로써 존엄사 논란에 대한 총대를 가장 먼저 멨다. 이 병원은 말기 암환자가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혈액 투석 등 세 가지 연명치료 항목에 대해 의사를 표시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21일 현재 2명의 암 환자가 이 서류에 서명한 상태다. 병원 측은 우선 말기 암환자에 대해서만 이를 적용하고 점차 다른 중증 질환으로도 확대해 나갈 방침이지만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 병원 허대석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대법원 판결로 존엄사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사전의료지시서를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에게까지 확대할지는 추후 논의가 필요하다"고 선을 그었다. 현 시점에서 식물인간 환자에 대한 존엄사 가이드라인을 제정하기가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국회에서는 2006년 당시 한나라당 안명옥 의원이 불합리한 연명치료 중단을 허용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무산됐고 지난 2월엔 같은 당 신상진 의원이 존엄사 법안을 발의했다. 전재희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은 "판례는 판례이고 입법화에 있어선 많은 논의를 거쳐야 할 것"이라며 "아직 부처 안에서 검토가 안 돼 있고 신상진 의원 안도 이미 나와 있으나 수정할 게 많아서 필요하다면 정부 입법을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