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모습 더 못 봐 강한 미련 남아"

대법원이 21일 식물인간 상태인 김모(77ㆍ여)씨의 연명치료를 중단하라는 판결을 내리자 가족들은 연명장치인 호흡기를 즉시 제거해 줄 것을 병원 측에 요구했다.

김씨의 가족들은 이날 오후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판결은 사회적 강자의 일방적 횡포에 대한 일침이자 인간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이 사회 구성원들의 바람을 나타낸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병원이 연명치료를 중단해 주지 않아 할머니와 우리가 오랫동안 고통받은 것이 유감스럽다"면서 병원 측에 즉시 호흡기를 제거해 줄 것을 요구했다.

가족들은 그러나 "온전히 살아계신다고 할 수는 없지만 생전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데 강한 미련이 남는다"고 덧붙였다.

이어 "이번 판결로 무의미한 연명치료로 인한 환자의 고통을 막을 근거를 마련했다는 것에 의미를 둔다"면서 "이로 인해 '존엄사'가 일반화됐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특히 이번 소송은 치료방법의 선택에 관한 소송이지 죽고자 하는 적극적 권리를 요구하는 소송이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한편 가족들로부터 소송 등을 위임받은 신현호 변호사(법무법인 해울)는 이번 판결을 환자 "주권주의의 확립을 선언한 기념비적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신 변호사는 "이는 치료 주권이라는 권력이 의사로부터 환자로 이동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재판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존엄사 여부에 대한) 환자의 의사를 입증하는 것이었다"면서 "재판부가 주변정황 등이 갖는 의미를 적극적으로 해석해 줘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 같다"고 덧붙였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김씨 가족이 세브란스 병원 운영자인 연세대학교를 상대로 낸 `무의미한 연명치료 장치 제거 등 청구소송'에서 인공호흡기 제거를 명한 원심 판결을 이날 확정했다.

김씨는 작년 2월 폐암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조직검사를 받다 과다 출혈에 따른 뇌손상으로 뇌사에 가까운 식물인간 상태에 빠졌고, 김씨의 자녀들은 기계장치로 수명을 연장하지 않는 것이 평소 어머니의 뜻이라며 존엄사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hwangc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