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국립대(NUS)가 단기간에 아시아 최고 대학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교수 사회를 개혁했기 때문입니다. "

탄 춰 취엔(Tan Chorh Chuan) 싱가포르국립대 총장(49)은 21일 한국경제신문과의 단독 인터뷰를 통해 초고속 성장 배경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그는 인터뷰 내내 수차례에 걸쳐 "더 훌륭한 사람을 채용할수록 더 좋은 대학이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외국인 교수 및 학생 비율이 유난히 높은 것에 대해서도 "더 우수한 교수들을 데려오려고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세계화된 교육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싱가포르국립대는 최근 영국 유력지인 '더 타임즈'의 평가에서 외국인 교수 비율 · 외국인 학생 비율에서 모두 만점을 받으며 2008년 세계 30위 대학으로 기록됐다. 아시아에서는 도쿄대(19위),교토대(25위),홍콩대(26위)에 이어 4번째다. 서울대와 베이징대가 공동 50위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눈에 띄는 성과다.

또 최근 한국의 한 언론과 영국의 대학평가기관인 QS(Quacquarelli Symonds)가 공동으로 실시한 아시아 대학 평가에서도 졸업생 평판도 부문 아시아 1위를 차지했다. 고려대에서 열리고 있는 '2009 유니버시타스(U21) 세계 대학총장 연례 심포지엄'에 참가하기 위해 방한한 그를 만나 '아시아 1등 대학'의 비결을 물었다.

▼싱가포르국립대의 눈부신 성과가 한국에서 주목받고 있는데.

"싱가포르국립대가 이렇게 좋은 평가를 받게 된 것은 2000년대 이후의 일이다. 우리는 2001년 대학을 완전히 뒤엎는 개혁을 시작했다. 제일 먼저 개혁의 메스를 댄 것은 교수 사회다. 교수들이 바뀌면 다른 모든 것은 자연스럽게 바뀌기 때문이다. 먼저 교수들의 연봉과 승진 체계를 확 바꿨다. 연공서열에 따라 결정되던 연봉을 기본급과 성과급으로 나눴다. 성과급은 최대 3개월치 봉급으로 결정했다. 연장자가 먼저 승진하던 관행도 버리고 무조건 성과 위주로 전환해 젊은 교수들을 많이 승진할 수 있도록 했다.

우수한 교수를 우대하는 시스템을 만들어놓고 나니 해외의 유명한 석학들을 쉽게 모셔올 수 있게 됐다. 또 교수들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자연스럽게 강의의 질,연구의 질이 높아졌다. "

▼정년을 보장받는 교수(테뉴어)들은 어떻게 선발하나.

"2001년 개혁을 하면서 테뉴어 시스템도 바꿨다. 이전에는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테뉴어를 받아 65세 정년을 보장받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일단 조교수로 채용된 후 9년간 테뉴어를 받지 못하면 학교를 떠나도록 하고 있다. 지금도 매년 전체 교수의 30% 이상이 테뉴어 심사에서 탈락한다. "

▼테뉴어를 받고 나면 교수들의 태도가 달라지지 않나.

"테뉴어를 받은 교수라도 성과가 좋지 않으면 성과급을 전혀 받지 못한다. 승진도 안 된다. 젊은 교수들이 치고 올라오는 동안 홀쭉한 월급 봉투를 받아야 한다. 테뉴어를 주더라도 이들에 대한 동기 유발 요인이 많이 있다는 뜻이다. "

▼싱가포르국립대의 성공 원인 중 하나로 '세계화'를 꼽는 이들이 많다. 교수진 절반가량이 외국인이고 학생들의 국적도 무척 다양하다.

"옛날에는 학생들이 졸업 후 평생 2~3곳의 직장을 경험했다. 지금은 평균 5~10곳에 이른다. 대학 교육이 달라져야 하는 이유다. 대학은 학생들에게 두 가지를 제공해야 한다. 첫째는 생각하는 방법이다. 지나치게 특정 영역에 집중해 가르치면 학생의 커리어에 오히려 걸림돌이 된다. 둘째가 세계화다. 학생들에게 보다 많은 기회를 주려면 세계화된 환경을 대학에서 경험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우리 대학에는 지금 100여개국에서 온 학생들이 있다. 또 매년 1400명 정도가 교환학생 등으로 해외에 나간다. "

▼외국 유학생 유치는 어떻게 이뤄지나.

"현재 학부 학생의 20%,석 · 박사과정생의 60%가량이 외국인이다. MBA도 그 정도 수준이다. 입학사정관들이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많이 방문한다. 인도나 중국도 주요 대상이다. 3년 전부터는 학생들의 고교 성적보다 자질을 더 중시하도록 입학 기준을 바꿨다. 지역사회에 기여한 학생을 선발하는 등 전형방식도 다양화하고 있다. "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립대에 외국인 학생 비율이 너무 높다는 비판은 없는가.

"학부생에 유학생 비중이 지나치게 높아지면 그런 여론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외국 유학생 유치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싱가포르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외국인들과 한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는 것은 교육의 질을 높이는 요소다. "

▼한국 대학들 중에는 해외 석학을 많이 유치해 경쟁력을 빠르게 향상시키고자 하는 곳이 많다. 한국 정부도 세계수준대학(WCU) 사업을 통해 석학 유치를 지원하고 있는데 조언할 것이 있다면.

"한국이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해외 석학 유치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자율성이다. 교수들이 자유롭게 연구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가르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학생들의 강의 평가,강의 포트폴리오,연구실적 등을 통해 정확히 성과를 평가하면 된다. "

▼해외 석학을 유치하기 위해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나.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일단 우수한 학자들과 관계를 맺게 되면 이들이 자신의 네트워크를 통해 또 다른 우수 인재를 소개하곤 한다. 눈덩이 굴리듯 인적 네트워크가 급속히 넓어지게 되는 것이다. "

▼한국 대학의 세계화 속도가 더딘 이유로 언어 장벽이 꼽힌다. 싱가포르는 그런 점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했다는 생각이 든다.

"맞다. 안타깝지만 영어를 사용하지 않고 세계화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다. "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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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 총장은=싱가포르국립대에서 의학 학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3년 사스(SARS)가 아시아 지역을 강타했을 때 싱가포르 보건당국에서 방역부문 총괄 담당자로 일하며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작년 12월 시춘풍 전 총장의 뒤를 이어 싱가포르국립대 총장으로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