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벌기인가, 아니면 자기 거취조차 선택할 수 없는 처지인가.

신영철 대법관을 향한 소장 판사들의 비판 목소리가 잦아들지 않는 가운데 신 대법관이 다시 긴 침묵을 이어가고 있다.

판사회의는 릴레이식으로 18일 하루에만 전국 10개 법원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려 절정을 이뤘고, 19일엔 광주지법 1곳에서만 개최돼 겉으로는 진정 국면에 접어든 것처럼 보이지만 법원 내부는 온통 신 대법관 얘기로 시끌시끌하다.

특히 법원의 `허리'인 단독판사급에서 시작된 판사회의에는 `막내'격인 지방법원 배석판사와 부장판사 승진을 앞둔 중견 고등법원 배석판사들까지 일부 가세하면서 신 대법관을 압박했다.

이런 상황에서 2003년 `4차 사법파동'의 주역 가운데 한 명인 박시환 대법관이 한 언론 인터뷰에서 "재판 개입은 독재시대의 유산"이라며 동료 대법관 문제를 거론해 신 대법관의 설 자리를 더욱 좁히고 있다.

그러나 당사자인 신 대법관은 침묵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지난 2월 재판개입 의혹이 불거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자신에게 집중되기 시작하자 외부와의 접촉을 철저하게 피해왔다.

취재진을 피해 지하 주차장으로 대법원 청사를 드나드는 것은 물론 동료 대법관이나 판사들도 거의 만나지 않은 채 `나홀로' 생활해 왔으며 기자들이 집에서 대기할 때는 시내 모처에서 출퇴근하기도 했다.

꼭 필요할 때 단 두 번 `사퇴할 생각이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꿋꿋하게 자리를 지켰다.

그는 지난 3월6일 논란이 확산되자 "법대로 하라고 한 것을 압력이라고 하면 동의하기 어렵다.

(자진사퇴할 의사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지난 13일에는 이용훈 대법원장으로부터 엄중 경고를 받자 법원 내부 전산망인 코트넷에 사과문을 올려 "불편과 심려를 끼쳐 드린 데 대해 진심으로 송구하다"고 했다.

"이번 사태를 통해 얻게 된 굴레와 낙인은 이 자리에 있는 동안, 아니 일생 짊어지고 갈 수밖에 없는 나의 짐"이라며 사퇴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럼에도 일선 판사들의 반발이 가라앉지 않는데다 본인 문제로 사법부가 내홍을 겪고 밖으로는 신뢰가 떨어지고 있어 어떤 형태로든 입장을 밝힐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게 법조계 안팎의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신 대법관이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심정으로 `용단'을 내려야 사태가 마무리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고, 인권의 최후 보루인 사법부의 신뢰를 떨어뜨린 만큼 `송구'를 넘는 사죄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신 대법관을 제청하고, 소장판사들이 보기에 미흡하기 그지없는 `엄중 경고' 조치를 내린 이용훈 대법원장을 위해서라도 그가 `행동'을 취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또 신 대법관이 결단을 내릴 타이밍을 놓쳤고, 대법관은 자기 거취조차 스스로 선택하는 자리가 아니라는 등 그의 결정을 어렵게 만드는 여러 요인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신 대법관의 오랜 침묵이 법원 안팎의 여론이 잠잠해지게 하는 성공적인 전략이 될지, 사태를 악화시켜 그야말로 사법부 파동을 현실화시키는 단초가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서울연합뉴스) 이한승 기자 jesus7864@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