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 확대하겠다. "(노동계) "초기에 도화선을 끊겠다. "(정부)

노동계의 하투(夏鬪)가 본격화되고 정부가 이에 대한 강경 대응 방침을 밝히면서 노 · 정(勞政) 갈등이 전면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올초 보여줬던 화해 무드는 사라지는 분위기다. 올 연말까지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등 노동계 현안이 얽혀 있는 상황이어서 이번 하투에 대한 해법을 찾지 못하면 최근 들어 진정 기미를 보이고 있는 국내 경제가 다시 침체의 터널로 빠져들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현실화되는 파업 도미노

건설노조는 18일 "지난 10~15일 조합원 투표에서 파업안이 가결됨에 따라 27일부터 파업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건설노조는 굴삭기,덤프트럭,레미콘 차주 등 특수고용직 근로자들로 구성됐으며 총 조합원 수는 2만3000여명이다. 건설노조가 파업에 나서면 전국 건설 현장의 공정에 차질이 불가피해진다.

플랜트건설노조도 이날 파업에 참여키로 하고 오는 25일까지 조합원들을 상대로 찬반 투표에 들어간다. 플랜트건설노조는 화물연대,건설노조 등과 같이 민주노총 산하 노조로 국내 주요 석유화학 및 제철단지의 플랜트 협력업체에 소속돼 공장 건설과 유지 보수를 주로 맡고 있는 근로자들로 이뤄졌다. 총 조합원 수는 2만5000여명에 이른다. 화물연대를 포함하면 현재까지 파업 중이거나 추진 중인 노조의 조합원 수가 총 6만여명에 육박하는 셈이다.

각종 집회와 파업 일정도 줄줄이 대기 중이다. 우선 오는 22일 금속노조가 간부들의 상경 투쟁을 계획하고 있어 또 한번 경찰과의 충돌이 우려되고 있다.

쌍용차 노조는 이달 말께 파업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다음 달 8일 2400여명의 정리해고 명단이 발표될 예정이어서 노조 측은 그 전에 파업에 돌입한다는 방침이다. 쌍용차가 파업에 들어가면 현대차,기아차,GM대우 등 금속노조 소속 다른 사업장의 연대 파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6월13일에는 민주노총이 서울에서 대규모 집회를 추진 중이다. 민주노총은 연쇄 파업을 통해 동력을 확보한 후 6월말께는 총파업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노 · 정 모두 강경한 이유는

민주노총은 이번 화물연대 파업을 통해 최근 흔들리고 있는 조직력을 복원하고,내부 결속도 다지겠다는 복안이다. 민주노총은 올초 성폭력 비리 등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데다 올 들어서만 10곳이 넘는 기업 노조가 탈퇴를 선언하는 등 안팎으로 시달리고 있다. 산하 노조들이 지도부 방침을 어기고 노사화합을 선언하는 등 권위도 추락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하투를 통해 지도부의 위상을 높이고 조직을 뭉치는 전환점으로 삼겠다는 기대를 가지고 있다. 밖으로 강경한 자세를 유지함으로써 향후 노 · 사 · 정 관계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이를 통해 △오는 6월 국회 상임위에 상정될 예정인 비정규직법과 최저임금법 △9월 국회 상정 예정인 근로기준법 개정안 △내년 초 시행 예정인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와 복수노조 허용 등 연말까지 이어지는 노동 관련 이슈에서 최대한 노동계의 목소리를 담아내겠다는 뜻이다.

정부도 물러설 수 없다는 의지가 확고하다. 이번 화물연대 사태가 노동계 연쇄 파업의 기폭제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자칫 미온적 태도를 보이면 노동계에 휘둘릴 수 있다는 우려를 가지고 있다.

이영희 노동부 장관이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화물연대 사태와 관련,"민주노총과 대화하겠다는 뜻은 변함이 없지만 진정성이 있는지 재확인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도 같은 이유다. 특히 화물연대나 금속노조 등의 경우 경제 전반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커 최근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경제가 이번 과격 시위로 인해 발목이 잡힐 수 있다는 위기감이 높다.

물론 정부나 노동계 모두 대화를 통한 해결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노동계로서는 경제위기 속에 파업을 벌이면 여론의 따가운 시선이 부담될 수밖에 없다. 정부 역시 비정규직 문제 등 노동계의 다양한 요구에 무조건적인 강경 태도를 취하기는 어렵다. 민주노총은 19일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 측에 노 · 정 교섭을 제안키로 했다. 정부도 평화적 시위를 보장하고 노동계와의 토론 창구는 열어둔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쌍용차 문제나 특수고용직 노동자 문제 등 당면 노동 현안에 대한 양측의 입장이 확고해 얼마나 시각차를 좁힐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