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도봉구의 한 고교에서 A형 간염 환자 11명이 집단 발병하는 등 전국적으로 이 질환이 유행하고 있다. 유난히 폭탄주를 즐겨 마시는 여의도 증권가에서도 A형 간염으로 입원한 직장인들이 속출해 술잔 돌리기를 자제하는 분위기다. 한술 더 떠 'A형 간염 공포증'으로 조금만 몸이 피곤하고 감기와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면 자신이 A형 간염에 감염됐는지를 알아보는 직장인이 늘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수인성 전염병인 A형 간염이 최근 들어 갑자기 늘어난 원인으로 경제 수준 향상에 따른 국내 위생 상태 개선과 해외여행자 급증을 꼽고 있다. 생활환경이 깨끗해지면서 40대 이하 젊은 세대는 어린 시절 A형 간염바이러스(HAV)에 자연스럽게 노출돼 항체가 형성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아 항체보유율이 10% 선에 불과하다. 반면 40대 이후 세대는 어렸을 때 HAV에 자연 감염돼 가벼운 감기처럼 앓고 지나간 경험이 있어 항체보유율이 90%를 넘는다. 너무 깨끗해도 문제가 되는 셈이다.

질병관리본부와 한양대 의대 공동 연구에 따르면 A형 간염 환자 발생률은 2002년 인구 10만명당 15.2명에서 2005년 18.8명,2006년 27.4명으로 급증했다. 올 들어서는 전국에서 3926명의 환자가 발생한 것으로 신고됐는데 연령별로는 20대가 36.7%,30대가 43.6%를 차지하는 등 A형 간염 환자 약 10명 중 8명이 20~30대 젊은 층이다.

국내에서는 매년 3000만명(연인원) 이상이 해외로 나가고 있고 이 중 수백만명이 남미 아프리카 인도 중국 인도네시아 옛소련 등 A형 간염 감염 위험이 높은 국가를 여행하고 돌아온다. 그러나 이들 지역을 여행하는 사람의 22%만이 HAV 예방백신을 접종해 여객기당 비접종자는 평균 333명에 이르며 이들 중 한 명은 감염된 상태로 귀국할 가능성이 높다는 추정 연구 결과가 나온 바 있다.

A형 간염은 B형,C형,D형 간염처럼 혈액을 통해 감염되지 않으며 만성화되지도 않는다. 주로 환자와 접촉한 손이 입에 닿거나,인분에 오염된 채소나 과일,가열하지 않은 조개 생선 등 날 어패류 등을 섭취할 경우에 감염되기 쉽다. 드물게 수혈이나 항문 · 구강 성교 등 성적 접촉으로 감염된다.

HAV에 감염되면 2~6주의 잠복기를 거친 후 고열 황달 피로감 식욕부진 복통 오심 구토 등의 증상을 보인다. 소변색은 짙게 변하는 반면 대변색은 엷어진다. 황달이 나타나기 전에 더 많은 바이러스가 나오기 때문에 잠복기에는 자신이 간염에 걸린 줄도 모르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옆사람에게 쉽게 전염시킬 수 있다.

A형 간염은 대부분 감기처럼 앓다가 항체가 생기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A형 간염 항체가 없는 성인이 감염된 경우 증상이 심하게 나타날 수 있다. 특히 나이가 많을수록 증상은 심각해져 50대 이후의 치사율은 최고 1.8~2.1%에 달한다. 입원 치료 비율도 15세 이하는 9~17%,15~40세는 19~23%이지만 40세 이후엔 29~42%로 올라간다.

HAV는 간세포 복제를 방해하며 인체는 HAV를 물리치기 위해 면역반응을 한다. 이 과정에서 간세포에 염증이 일어나 딱딱하게 굳어지며 개별 간세포의 기능이 떨어진다. 따라서 조기에 치료해야 치사율을 낮추고 심각한 간기능 저하도 피할 수 있다. 감염 초기에 혈액검사를 실시하지 않는 한 A형 간염을 잡아내기 어렵다. 의원에서 감기 몸살 정도로 여기고 방치하다가 갑자기 정신을 잃고 간성혼수상태에 빠져 큰 병원으로 옮겨 입원 치료를 받는 A형 간염 환자를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치료는 충분한 휴식과 고단백 식품 섭취다. 국내에 출시된 A형 간염 예방백신 제품은 하브릭스(GSK),박타(한국MSD),아박심(사노피아벤티스코리아),이팍살(베르나바이오텍코리아) 등 모두 4가지로 1~16세에 예방접종해야 하며 6~12개월 뒤에 추가 접종하면 된다. 면역력은 최소 10년 이상 유지되며 접종 비용은 4만원(2회 기준) 정도다. 조리사나 HAV 고위험국가 여행자,집단생활자,혈우병환자,만성 간질환 환자,의료종사자는 접종이 권고된다. 보건당국은 A형 간염의 확산 추세에 따라 1군 법정전염병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고 HAV 백신을 필수 예방접종 항목으로 넣을지 검토 중이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

◆도움말=임형준 고려대 안산병원 소화기내과 교수,김도영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간암전문클리닉 교수,이항락 한양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