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 판사들, 대법원 정면 비판 `파장'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에서 신영철 대법관이 대법관으로서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다수 의견이 나왔다.

이는 명시적인 표현은 아니지만 사실상 참석자 다수가 신 대법관이 사태의 책임을 지고 용퇴해야 한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풀이돼 귀추가 주목된다.

서울중앙지법 전체 단독판사 126명 중 88명은 14일 오후 6시30분부터 자정 무렵까지 단독판사회의를 갖고 신 대법관의 사퇴 여부를 직접적으로 논의하는 대신 `대법관으로서의 업무 수행이 적절한가'라는 안건을 놓고 표결을 해 참석자 과반 이상이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냈다.

판사회의 관계자는 "다수 의견과 소수 의견의 차이가 현저한 것은 아니었고 소수가 무시할 정도는 아니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대법관 직무수행 부적절'이라는 모호한 표현이 어떤 의미인지를 묻는 질문에는 "따로 결의하지는 않았지만 알아서 생각하면 된다"고 답해 사실상 용퇴를 촉구한 것임을 시사했다.

참석자들은 또 표결을 통해 신 대법관이 단독판사들에게 촛불집회 사건 피고인의 보석 허가를 자제하도록 하거나 현행법에 따라 조속히 선고하라고 채근한 행위는 명백한 재판개입이라는 결론을 내렸고, 촛불집회 사건을 특정 재판부에 몰아주거나 반대로 특정 판사들을 배제하고 배당한 것 또한 배당권 남용이라고 판단했다.

참석자들은 아울러 "대법원의 조치와 신영철 대법관의 사과가 이번 사태로 인해 침해된 재판의 독립과 실추된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데 미흡하다"고 결의했다고 판사회의 관계자는 전했다.

이는 "신 대법관의 행위가 사법행정권의 일환으로 이뤄지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부적절했다"는 공직자윤리위원회 결정을 문제 삼으면서 이를 근거로 한 대법원장의 경고 조치도 정면으로 비판하는 것으로 몇 시간 앞서 열렸던 서울남부지법 단독판사회의 결론보다 한층 수위가 높은 것이다.

또 이용훈 대법원장이 이미 윤리위의 권고를 받아들여 신 대법관에게 `엄중 경고'를 하고 징계위에 회부하지 않은채 사안을 마무리 지은 터여서 이번 판사회의를 통해 대법원장의 지도력에도 큰 상처를 입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앞서 서울남부지법 단독판사 29명은 이날 회의를 열고 "신 대법관의 행위는 공직자윤리위가 발표한 것처럼 사법행정권의 일환이라거나 '외관상 재판 관여로 오인될 수 있는' 행위가 아니라 명백한 재판권 침해로 위법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 "신 대법관의 사과가 이번 사건의 파문을 치유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지적한 뒤 "신 대법관의 거취 문제는 추후 지속적인 논의를 펼쳐나겠다"고 밝혔다.

서울남부지법에 이어 전국 최대 규모인 서울중앙지법 판사들이 이 같은 결론을 내림에 따라 다른 법원에서 잇따라 열리게 될 단독판사회의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서울동부ㆍ북부지법에서 15일 단독판사회의를 열기로 하는 등 전국 법원의 소장 판사들도 잇따라 신 대법관의 재판개입 사태에 따른 대응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어서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한편 이날 김용담 대법원 법원행정처장과 강일원 기획조정실장, 김상준 사법정책실장 등이 서울중앙지법에 직접 찾아와 판사회의 동향을 예의주시하기도 했다.

(서울연합뉴스) 차대운 이세원 기자 setuz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