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뇌물을 받았다면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의 '워터게이트'보다도 심각한 범죄죠.논란의 여지는 있지만,닉슨은 적어도 사적인 이익을 위해 범죄를 저지른 건 아니니까요. "

안세법률사무소의 션 헤이스 변호사(36)는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박연차 게이트'에 대한 소감을 이같이 밝혔다. 헤이스씨는 미국인으로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갖고 있으며,2002년부터 한국에서 변호사 활동을 하고 있다.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헌법재판소 연구관을 지냈고,2004년부터 4년 동안 국민대 법대 교수로 재직했다.

헤이스 변호사는 "미국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이 저지를 경우 탄핵받는 범죄로 구체적으로 명시된 것은 반역죄와 뇌물죄밖에 없으며 나머지는 '기타 중대한 범죄'로만 적혀 있다"며 "그래서인지 미국에서는 다행히도 근대 이후 뇌물죄로 처벌받은 대통령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일반 정치인이나 공무원들도 뇌물을 받아 적발되는 경우가 많지만 고위직일수록 그런 사례는 한국에 비해 적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헤이스씨는 한 · 미 간에 이 같은 차이를 보이는 배경으로 '엄격한 처벌'을 꼽았다. 그는 "미국은 정부나 기업의 고위직에 있을수록 범죄에 대한 처벌이 강한데, 한국은 오히려 '사회 기여' 등을 이유로 고위직이나 유명 인사들에 대한 처벌을 약하게 하는 것 같다"며 "미국 통신업체 월드컴의 창업자인 버나드 에버스 전 회장은 110억달러의 분식회계 사건으로 징역 25년형을 선고받았는데 한국 기업인들은 거액을 분식회계해도 기껏해야 징역 2~3년형 정도밖에 받지 않는다는 점이 놀랍다"고 꼬집었다.

헤이스 변호사는 '관대한 처벌'의 배경으로 "한국에서는 유명 인사들이 처벌받으면 그 뒤를 이을 사람이 없을 것으로 보고 걱정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는 "20~30년 전이라면 그런 걱정이 맞을 수도 있지만 요즘에는 훌륭한 젊은 인재들이 많아 이들이 유명 인사들의 뒤를 이을 수 있다"며 "엄격한 처벌은 정부와 사법체계에 대한 신뢰의 문제로도 연결되는 만큼 이를 꺼려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처벌을 받은 유명인사들에 대한 사면복권도 미국에서는 드물다고 헤이스 변호사는 설명했다. 그는 "포드 전 대통령은 닉슨을 사면했다가 국민들로부터 미움을 사 나중에는 군부대 외에는 연설도 못할 정도였다"며 "클린턴 전 대통령은 임기 중에는 사면을 거의 안하다 임기 말에서야 기업인들 일부를 사면했고 그나마 고위직 공무원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헤이스 변호사는 노 전 대통령이 600만달러 수뢰와 관련해 "나는 몰랐던 일"이라고 주장하는데 대해 "미국 법정에서라면 어떤 판결이 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그렇게 큰 돈을 가족이 받을 때까지 아버지가 몰랐다는 사실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이 판결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그러나 "미국에서라면 노 전 대통령은 구속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도주 가능성이 짙지 않는 한 범죄의 중대성과는 상관없이 불구속 수사가 원칙이라는 이유에서다.

헤이스 변호사는 "미국에도 많은 부패가 있지만 그에 맞서 싸우려는 사법당국의 의지 역시 강하다"며 "근대화 역사가 짧은 한국이 '박연차 게이트'와 같은 성장통을 잘 이겨내길 바란다"고 말했다.

글=임도원 기자/사진=강은구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