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위 결정 수용에 '엄중경고' 절충

13일 이용훈 대법원장이 재판개입 의혹과 관련해 신영철 대법관을 `엄중' 경고한 것은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의 결정을 존중하면서 일선 법관들의 반발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절충안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법원장 스스로 신 대법관 사건을 윤리위에 부친 마당에 그 결정을 내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점과 각급 법원에서 윤리위의 결정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급속히 번지고 있다는 점이 동시에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이 대법원장은 이날 "신 대법관이 서울중앙지법원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재판의 내용이나 진행에 관여한 것으로 인식될 수 있는 부적절한 행동을 한 데 대해 엄중히 경고했다"고 밝혀 윤리위의 판단을 수용했다.

재판 관여로 `인식될 수 있는' 부적절한 행동이었다는 것은 윤리위의 결론으로 `신 대법관이 재판에 관여한 것으로 볼 소지가 있다'는 대법원 진상조사단의 결론과 상당한 간격을 두고 있다.

주의나 경고 선에서 사건을 매듭지을 것을 권하는 윤리위의 결정은 사실상 진상조사단의 결론보다 크게 후퇴한 것이어서 일선 판사들의 공개적인 반발을 불러왔고 이 대법원장이 전격적으로 신 대법관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제기됐다.

일부 법원에서 판사회의를 소집하기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된 12일 이 대법원장이 신 대법관을 제외한 대법관을 모두 불러 의견을 수렴했다는 사실도 이런 관측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이 대법원장은 `엄중 경고'라는 카드를 꺼내 윤리위의 결정을 받아들이면서도 내부 비판을 잠재우는 쪽을 택했다.

평판사도 아닌 대법관이 다른 것도 아닌 재판 개입 문제로 경고를 받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상황에서 `엄중 경고'로 윤리위의 권고보다 중한 조치를 했다는 제스처를 취한 셈이다.

입장문에 `신 대법관의 행동으로 법관들이 마음에 상처를 입고 재판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손상되는 결과가 초래됐다'고 명시하고 유감을 표명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이 대법원장의 이 같은 입장 표명이 이미 촉발된 내부 논란을 잠재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신 대법관에 대한 주의나 경고 조치로 사안을 마무리하려는 윤리위 결정이 적정했는지에 대해 각급 법원을 중심으로 판사회의가 소집되고 있고 신 대법관의 용퇴를 주장하는 의견도 내부통신망 등을 통해 공개적으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대법원장이 `엄중 경고' 선에서 재판개입 의혹 사건의 꼬리를 자르는 것으로 비춰져 법관들의 집단행동을 부추길 수도 있기 때문에 대법원장의 절충안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서울연합뉴스) 백나리 기자 nar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