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장기기증 활성화방안' 마련

사망했거나 뇌사 상태에 빠진 사람이 생전에 장기 기증을 약속한 경우 유족이 반대하더라도 장기 기증이 이뤄지게 된다.

보건복지가족부는 12일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장기기증 활성화 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이 방안은 복지부가 의료계, 종교계, 법조계, 장기기증 관련단체 등과 두 달여의 논의를 거쳐 확정한 것이다.

현재는 뇌사자 또는 사망자의 장기를 이식하려면 자신이 이미 기증 의사를 밝혔다고 하더라도 유족 2명의 기증 동의를 받아야만 실제 기증이 이뤄진다.

손영래 공공의료과장은 "본인의 기증 약속이 무산되는 사례가 적잖이 발생해 자기결정권이 약해지는 단점과 유족에게 기증 의사를 또 묻는 과정에서 윤리적ㆍ정서적 고통을 유발하는 측면을 보완하고자 이 같은 방안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또 생전에 장기 기증 의사를 밝히지 않은 뇌사자의 경우에는 기증 동의를 받아야 하는 유족의 숫자를 현재 선순위 2명에서 1명으로 줄이기로 했다.

기증 동의는 배우자-직계존속-직계비속-형제의 순서로 받게 돼 있다.

정신질환이나 정신지체가 있는 장애인의 경우 현재는 자신이 기증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장기를 기증받을 방법이 없지만, 앞으로는 유족의 동의만 얻으면 장기 기증이 가능해진다.

장기를 기증할 뇌사자를 적극적으로 발굴하고자 뇌사 추정 환자를 의료기관이 의무적으로 신고하도록 하는 제도도 도입된다.

복지부는 연간 뇌사 추정 환자를 연간 5천 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으나 의료기관의 신고 실적은 지난해 391명, 2007년엔 264명에 불과했다.

손 과장은 "신고제 시행을 위해 뇌사 추정환자의 정의 및 신고 절차를 명확히 규정할 것"이라며 "신고 실적이 우수한 의료기관에는 각종 혜택을 제공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복지부는 각 뇌사판정 의료기관에 설치된 뇌사판정위원회가 `옥상옥'이란 지적을 받는 점을 고려, 참여 위원 숫자를 현재 6~10명(전문의 3인 포함)에서 4~6명(전문의 2인 포함)으로 축소키로 했다.

이는 지금까지 뇌사판정위가 뇌사 판정을 거부한 사례가 없다는 점과 과도하게 많은 위원을 긴급히 소집하느라 시간이 지체돼 기증받은 장기가 손상된 사례가 5건이나 발생한 점을 개선하려는 것이다.

장기 기증 활성화 조치로 장기 매매ㆍ알선ㆍ소개 등의 부작용이 일어날 가능성과 관련, 장기를 이식하는 의료기관만 장기이식 대기자를 등록ㆍ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보완책을 마련했다.

현재는 의료기관 외에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대한적십자사, 비영리법인 등도 장기이식 대기자를 등록하고 관리하는 업무를 할 수 있다.

복지부는 이런 내용을 담은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이달 중 확정해 오는 9월 정기국회 회기에 제출한다는 방침이다.

정부가 이처럼 과거에 비해 다소 파격적인 장기기증 활성화 방안을 추진하고 나선 것은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각막 기증 이후 장기 기증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크게 개선된데 힘입은 측면이 크다.

지난해 장기를 기증한 뇌사자는 2007년에 비해 2배 가까이 늘어난 256명으로 사상 최다를 기록하긴 했지만, 장기 이식 대기자도 1만717명으로 2007년 7천614명보다 크게 늘었다.

특히 인구 100만 명당 장기 기증자 수로 따지면 여전히 선진국의 20% 수준에 불과해 장기 기증 문화를 뿌리내리기 위한 대책이 필요한 현실이다.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lesli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