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선 임대업자는 책임없어..사후감독 대책 시급

"오빠~ 지금 약속장소로 가고 있으니까 전화 끊지 말고 계속 통화해요."

인터넷 채팅방의 남성을 음란폰팅으로 끌어들여 수백억을 챙긴 일당이 경찰에 적발되면서 인터넷 전화를 이용한 사기 행각에 주의가 요구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스팸전화의 대명사'로 알려진 인터넷 전화 식별번호 '060'을 감추기 위해 전화번호 앞에 다른 숫자를 누르도록 하는 방식을 주로 썼다.

채팅방에서 남성에게 전화번호를 찍어주며 발신번호 표시제한 기능인 '*23#'이나 '169'를 덧붙여 '060' 번호임을 쉽사리 눈치를 채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06-0xx-xxxx'나 '060x-xx-xxxx'처럼 식별번호와 국번을 교묘하게 끊는 방법도 이용했다.

눈치 빠른 피해자가 번호를 의심하면 "휴대전화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친오빠 회사전화를 당겨서 일반전화로 쓴다"며 빠져나갈 구멍도 준비해뒀다.

이들은 또 통화가 연결된 뒤 060 음성정보서비스의 이른바 '안내멘트'를 감춰 피해자들이 일반인과 통화하는 것처럼 감쪽같이 속였다.

'*' 버튼을 누르면 안내멘트가 생략되는 점을 이용, '*'버튼을 곧바로 누르지 않으면 "다른 데로 빠져서 통화할 수 없다"며 남성들을 속인 것.
서비스에 연결되자마자 배경에 깔리는 음악은 '컬러링'이라고 둘러댔다.

피해자들은 채팅방에서 만난 여성과 '번개 만남'을 하고 싶은 급한 마음에 이들의 사기 행각에 걸려들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또 피해자의 심리를 잘 아는 남성 아르바이트를 고용, 채팅방에서 여자 행세를 하도록 해 남성들을 폰팅으로 끌어들였다.

전국의 행정구역 목록을 뽑아놓고 피해자와 가까이 사는 것처럼 소개한 뒤 곧바로 약속장소를 잡았다.

통화가 연결된 뒤에는 여성 상담원이 "지금 차를 몰고 가고 있다"거나 "머리를 말리는 중이니 기다려 달라"고 시간을 끌며 30초당 700원인 정보이용료를 계속 뜯었다.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겼으니 내일 만나자"고 하면 대부분의 피해자가 다음날 다시 전화를 걸었다고 경찰은 전했다.

한편, 이들이 1년여에 걸쳐 320만명에게 230억원을 뜯는 동안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은 것은 인터넷 전화 회선의 임대가 여러 단계에 걸쳐 이뤄진 데다 이들에게 회선을 빌려준 임대업자들이 눈앞의 이익만 챙기느라 손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이들은 3천600여개의 전화 회선을 인터넷 전화 기간통신사업자(ISP)에게 임대한 별정통신사업자(MIP)로부터 재임대해 사용했다.

회선 임대계약서에 '음란전화 서비스 등에 회선을 사용하면 계약을 해지한다'는 조항이 있지만 이들과 정보이용료를 나눠 갖는 별정통신사업자는 이같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경찰은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기간통신사업자도 자신이 운용하는 회선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하지만 법적 책임은 없다"며 "이들에게 사후감독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전주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tel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