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객 여러분 죄송합니다만 잠시만 더 좌석에 가만히 앉아주십시오. 검역소에서 신종플루 검역을 위해 체온 측정을 하겠습니다."

4일 오후 5시20분 영종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미국 로스앤젤레스 발의 한 국적기 안에는 공항 검역소 직원의 안내 방송이 울려 퍼졌다.

다른 날 같았으면 승객들이 긴 여정을 끝내고 가족과 한시라도 빨리 만날 생각에 부산스럽게 짐을 챙겼겠지만 이날은 모두 무거운 침묵 속에서 자리를 지켰다.

곧바로 공항 검역관들이 가져온 체온 측정 카메라가 기내 복도를 바삐 움직이며 승객들의 머리 위를 훑고 지나갔다.

검역관들은 카메라 모니터에 얼굴 부위가 고온을 뜻하는 붉은색으로 표시된 승객에게는 체온기를 들이댔다.

신종 인플루엔자인 '인플루엔자 A(H1N1)'에 감염돼 고열을 내는지를 살펴보려는 것이다.

신종플루의 확산세가 한풀 꺾였지만, 공항 검역 당국은 혹시나 있을지 모를 감염자를 공항 입국장에 발을 들여놓기 전에 가려내기 위해 기내 검역체제를 가동하는 등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있다.

인천공항 검역소는 지난 1일부터 미국, 캐나다, 스페인 등 신종플루 감염 지역에서 출발했을 가능성이 있는 승객이 탄 항공기에 대해 선별적으로 기내 검역을 시행하고 있다.

4일의 기내 검역에서 체온이 37.3℃를 넘은 여성 승객 3명이 정밀 검진을 위해 검역대로 이동했다.

이들을 상대로 즉시 인플루엔자 양성 반응을 알아보는 신속항원검사(RAT)가 이뤄졌지만 다행히 모두에게 음성 판정이 나왔다.

이 검사를 받은 재미교포 정모(여) 씨는 "나는 평소에 감기에도 잘 걸리지 않는데 체온이 높게 나왔다고 해서 조금 놀랐다"며 "음성 판정이 나와서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검역 당국 관계자는 "빈틈없는 검역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기내 검역을 시행하고 있다"며 "인력을 대폭 보강하고, 카메라 장비도 늘려 대체로 원활한 검역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승객들은 잠깐이나마 발을 묶는 검역이 달갑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지 않으냐'는 반응을 보였다.

미국에 있는 친지를 방문하고 돌아온 김모(45) 씨는 "미국에서도 신종플루가 사회적 이슈가 돼 있다"며 어느 정도의 불편을 감수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신종플루의 유입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항공사들도 기내 소독을 강화하는 등 고도의 대비태세를 유지하고 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신종플루가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미주발 항공기 전편의 객실 복도 등에 특별 소독제를 뿌리고, 의자 손잡이를 살균제로 닦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한항공은 정화 장치를 돌려 기내 공기 속의 박테리아와 바이러스 등 오염물질을 99.9% 이상 걸러내고 있다고 전했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기내 방역을 철저히 하면서 열이 있는 환자가 탄 항공편에서는 원하는 승객들에게 방역 마스크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종도연합뉴스) 윤종석 기자 banan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