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도 치료용 항암백신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일상생활이 곤란할 정도의 구토 피로감 탈모 등 부작용을 일으키지 않고 암을 치료하는 백신이 국내 제약사인 카엘젬백스(대표 김상재)에 의해 개발되고 있다.

이 회사는 한국과학기자협회가 최근 '암 백신의 현황과 미래'란 주제로 개최한 포럼에서 "췌장암 치료에 탁월한 효과를 보이는 암 백신 'GV1001'에 대한 3상 임상시험을 영국에서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총 1100명의 췌장암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이 임상시험은 영국 리버풀대학병원 의료진의 주도로 2011년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제3상 임상시험은 상품화를 앞두고 최적의 주사 용량을 맞추는 신약개발의 마지막 단계다. 영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췌장암 백신 2상 · 3상 임상시험은 영국 리버풀대학병원이 영국 정부로부터 4000만유로를 지원받을 정도로 상품화 가능성이 유망하다.



GV1001은 유럽 각국에서 이뤄진 2상 임상시험 결과 췌장암 환자(영국)의 평균 수명을 8.6개월,간암 환자(스페인 독일 프랑스)는 12개월,폐암 환자는 8.5개월(노르웨이,올 6월 발표 예정)씩 연장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췌장암에 대한 수명연장 효과는 현재 가장 많이 쓰이고 있는 화학요법 항암제인 릴리의 '젬자'(성분명 젬시타빈)가 보이는 6개월보다 2.6개월이나 늘어났다.

GV1001은 암 환자의 체내에 항원(텔로머라제)을 주입해 항체 생성을 유도,암을 공격케 하는 치료 백신이다. 텔로머라제는 DNA 끝 부분에 존재하는 텔로미어가 탈락되지 않게 보호하는 효소로서 정상세포에선 세포의 수명을 연장시키고 장수를 이끈다. 하지만 암세포에선 세포가 분열을 멈추지 않고 무제한 증식하도록 돕는 단백질로 작용한다. 암세포의 85~90%에서 텔로머라제가 발견된다.

GV1001은 텔로머라제를 구성하는 수많은 펩타이드 중 정상세포에는 영향을 주지 않고 암세포만 공격하는 16조각만을 선별해 인위적으로 합성한 것이다. 여기에 면역보조제인 GM-CSF(과립구-대식세포 콜로니 자극인자)를 첨가하면 수지상세포(암세포를 식별했다가 T세포에 공격명령을 내림)가 자극을 받아 암세포 살상능력이 향상된다.

치료용 암 백신은 기존 화학항암제나 수술,방사선치료보다 유리한 점이 많다. 수술의 경우 장기 절제로 인해 장기의 기능이 저하될 수 있고 암 환자의 면역력을 떨어뜨려 바이러스나 세균 등이 2차 감염될 가능성을 높인다. 화학항암제 투여나 방사선 치료를 시행하면 구토 오심 소화불량 백혈구감소 빈혈 피로감 변비 등으로 환자가 고통스러워한다. 반면 항암백신은 주사를 통해 몸에 들어가 암세포만을 타깃으로 삼아 공격하기 때문에 이런 단점들이 거의 없다.

암 백신은 크게 예방용과 치료용으로 나뉜다. 2010년쯤 전 세계적으로 80억달러 규모의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예방용으로는 다국적 제약사인 MSD의 '가다실'과 GSK의 '서바릭스'가 이미 국내에 출시돼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간염백신도 넓은 의미에서 간암 예방백신으로 볼 수 있다.

치료용 백신은 이르면 2~3년 내 상품화될 전망이다. 카엘젬백스의 췌장암 백신 GV1001 외에도 사노피아벤티스는 신장암 백신 '트로벡스'를,일본 다케다제약은 전립선암 백신 '지박스'에 대한 3상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성승용 서울대 의대 미생물면역학과 교수는 "이들 암 치료용 백신 외에도 방광암 뇌종양 유방암 등에 대한 암 백신이 개발되고 있다"며 "2013년이면 이들 백신이 상용화되고 2020년에는 210여종의 암 백신이 등장하면서 암 정복시대가 활짝 열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카엘젬백스는 국내 반도체 생산 공정시 발생하는 유해가스 제거용 필터를 생산하는 카엘이 지난해 10월 노르웨이 항암백신 전문기업인 젬백스의 지분 100%를 약 1000만달러에 사들여 세운 회사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