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이 씻은 그릇에 물을 조금만 붓고 약한 불로 삶는다. 오랜 시간 충분히 익혀 낼수록 맛이 난다. 황주(黃州)의 돼지고기는 맛있고 값도 싸지만, 부자들은 먹기를 꺼려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조리할 줄을 모른다. 아침마다 두 그릇씩 배불리 먹으니,그 맛 비길 데가 없다. '

―<돼지고기를 칭송함(猪肉頌)>


중국 북송의 문인 소식(蘇軾 · 1036~1101년)이 40대 중반 나이에 황주에서 유배 생활을 할 때 직접 개발했다는 돼지고기 조리법이다.

그의 호(號)를 붙여서 '동파육(東坡肉)'이라고 불리는 이 돼지고기 요리는 맛도 있고 만들기도 쉬워서 남자들이 만만히 보고 맨 먼저 도전하는 메뉴이기도 하다.

그래서 요즘에는 '아내를 위한 요리' 특선에 반드시 빠지지 않는다. 소식이 평생 아내를 사랑하고 애틋해했던 것을 생각하면 썩 어울리는 선택이 아닌가 싶다.

소식은 두 명의 아내를 차례로 맞았지만 모두 먼저 세상을 떠났다. 19세에 결혼한 첫 부인 왕불과는 11년 만에 사별했다. 그것도 관직을 떠도느라 함께 산 것은 채 4년이 안 됐다. 10년 뒤 소식은 글동무같이 지냈던 아내를 그리워하며 도망사(悼亡辭)를 지었다.

'생사간에 떨어져 10년 세월 흘렀으나(十年生死兩茫茫) / 생각하지 않을래도 잊을 수 없다(不思量, 自難忘)… / 밤마다 꿈속에서 돌아가 보는 고향집(夜來幽夢忽還鄕) / 작은 창 난간에 머리 빗고 몸단장하는 그대(小軒窓,正梳粧) / 서로 보며 아무 말 못하고(相顧無言) / 그저 천 갈래 눈물만 흘린다(惟有淚千行)'

―<강성자(江城子) 부분>

두 번째 부인 왕윤지는 소식이 58세 때 병을 얻어 갑자기 죽었다. 재치가 여간 아니었던 모양으로, 소식은 <후적벽부> 첫머리에 아내 자랑을 이렇게 늘어 놓았다.

"이 해(1082년) 10월 보름 두 길동무와 놀다가 이렇게 탄식했다. '손은 있으나 술이 없고, 술은 있어도 안주가 없으니 달 밝은 밤을 어찌할까. '그러자 한 사람이 말했다. '오늘 저녁 무렵 그물을 올려 농어를 닮은 고기를 얻었는데, 어디 술을 얻을 곳이 있겠는가?' 돌아와 아내와 상의하니,아내는 '나한테 술이 조금 있는데 간직해 둔 지가 오래됐습니다. 당신이 느닷없이 술 내놓으랄까봐 미리 준비해 뒀지요(我有斗酒,藏之久矣.以待子不時之需)'라 한다. "

소식의 말년 유배 생활을 지킨 것은 둘째 부인의 몸종으로 들어왔다가 첩이 된 스물 여섯 살이나 어린 왕조운이었는데,이마저도 먼저 죽어 그를 쓸쓸하게 만들었다.

소식은 늘 아내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자식은 도연명의 아들들과 다를 바 없지만,아내는 경통보다 훨씬 현처를 얻었다(子還可責同元亮,妻却差賢勝敬通)"고도 했다. 후한을 살았던 경통과 불우한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그가 투기가 심하고 거친 아내를 얻은 것에 비하면 자기는 운이 좋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식은 아내한테 쥐여 사는 친구들을 신나게 놀리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친구 진계상(陳季常)이다. 그는 소식이 놀려 준다고 쓴 시가 널리 회자되는 바람에 중국 역사에서 공처가의 대명사로 통한다.

'내 친구 용구거사는 불쌍하기도 하지 / 밤새도록 공(空)이니 유(有)니 고담준론하다가도 / 하동부인 으르렁대는 소리만 들리면 / 그만 놀라 지팡이도 놓치고 허둥대누나'

―<오덕인과 계상에게 주는 편지>


5월 가정의 달이다. 다들 힘든 세상을 지나고 있지만 그럴수록 소중한 것이 가정이다. 삶의 현장에서 시달리고 피곤해도 내색하지 않는 남편과 아내를 위해 잘 익은 동파육 한 그릇으로 고마움을 표시하면 어떨까? 애틋할수록 여운이 남는 소식의 사랑법을 나누는 것만으로 집집마다 훈훈한 에너지가 넘쳐날 것 같다.

편집위원 rgbac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