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대통령이 검찰 조사를 받는 일이 다시는 생기지 않길 바랐는데….착잡하네요. "

1995년 '노태우 비자금 사건' 당시 대검찰청 중수2과장으로 주임검사를 맡았던 문영호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변호사(58)는 29일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문을 열었다. 문 변호사는 헌정 사상 개인비리 혐의로는 처음으로 검찰에 소환된 노태우 전 대통령을 1995년 11월1일과 15일 두 차례에 걸쳐 대검 특별조사실에서 직접 조사했다.

문 변호사는 "당시만 해도 전직 대통령을 검찰청사로 부르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며 "검사로서 남다른 보람을 느꼈지만 중압감도 매우 컸다"고 회상했다. 무엇보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했다고.문 변호사는 "소환 조사에서는 상대편 호칭을 부를 일이 거의 없지만 꼭 불러야 할 때는 '대통령께서'라고 존대했고 '각하'라는 표현은 쓰지 않았다"며 "노태우 전 대통령도 '검사님'이라며 서로 존대했다"고 말했다. 그는 "최대한 엄중하게 추궁했지만 노 전 대통령과 조사팀 간에 민망한 상황은 연출되지 않았다"고 술회했다.

노 전 대통령은 "내가 재임 중에 예산을 배정해 이 건물(대검찰청)을 짓도록 했는데 여기서 조사를 받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며 말문을 열었다고 했다. 문 변호사는 "구체적인 질문에 대해 성실하게 답변을 해주면 좋겠다"며 조사를 시작했다.

문 변호사가 조사 과정에서 염두에 둔 것은 '강약조절'이었다. 그는 "분위기를 봐서 엄하게 추궁하다가 다시 정중하게,그리고는 다른 검사가 나서 다시 험하게 묻기도 하는 등 완급을 조절했다"며 "노 전 대통령은 이에 당황해 하는 눈치였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당시 노 전 대통령 신문 조사에는 문 변호사와 또 다른 검사,그리고 일반 수사관인 참여계장 등 3명이 투입됐다.

노 전 대통령의 진술을 받아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문 변호사는 "노 전 대통령이 시종일관 '큰 금액에 대해 내가 밝혔는데 구체적인 부분에 대해 추궁하면 답변하기 곤란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은 소환에 앞서 10월27일 자택에서 대국민 사과성명을 발표하고 5000억원대의 비자금 조성을 시인했다. 노 전 대통령은 다음 날 새벽 2시께 조사가 끝나고 귀가하면서 "검사들이 이렇게 고생하는지 몰랐다"고 말하는 '여유'를 부리기도 했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의 진술태도는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뇌물 공여에 대한 증언을 확보한 후 진행한 2차 소환조사에서 다소 바뀌었다. 문 변호사는 "구속을 예상했는지 조사실에 올 때부터 표정이 무겁고 체념의 빛이 보였다"며 "'그 사람이 그렇게 진술했다면 맞을 겁니다'라며 피동적으로 혐의를 시인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이날 조사는 밤샘으로 진행됐지만,조사팀은 밤 12시부터는 노 전 대통령을 침대에서 재우고 그 옆방에서 밤새도록 다음 수사를 위한 준비작업을 진행했다. 그는 현재 검찰의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에 대한 평가를 묻자 "함부로 말하기 곤란하다"며 난색을 표했다. 그는 그러나 "노태우 전 대통령을 수사할 때는 수사내용이 브리핑 외에 언론에 흘러나온 적이 단 한 번밖에 없을 정도로 보안이 철저했다"고 자랑스러워했다.

문 변호사는 사시 18회로 1978년 부산지검에서 검사생활을 시작한 뒤 대검 마약과 과장,중수2과장,부산지검 검사장,수원지검 검사장을 지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