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거 중인 부인이 있는 처가에 찾아가 집요하게 만나달라고 한 남편에게 법원이 100m 접근금지를 명령했다.

가족 간에 가정폭력이 문제가 돼 접근금지 처분이 내려지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지만 명백한 범죄행위가 수반되지 않은 상황에서 접근금지가 결정된 것은 이례적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박병대 수석부장판사)는 김모 씨가 남편 이모 씨를 상대로 낸 접근금지 가처분 신청을 일부 받아들였다고 28일 밝혔다.

김 씨는 결혼 20년째인 2007년부터 두 자녀를 데리고 친정으로 가 남편과 별거 생활을 시작했다.

이 무렵부터 남편 이 씨는 자주 처가가 있는 아파트로 찾아가 만나주지 않는다며 소리를 지르거나 집 앞 계단에서 밤을 지새웠다.

게다가 이 씨는 부인에게 `계속 계단에서 지내겠다', `만나주지 않으면 여기서 죽겠다'는 내용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여러 차례 보냈다.

3년의 별거 생활 끝에 김 씨는 이혼 소송을 내면서 별도로 남편이 자신과 자녀들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했다.

재판부는 "이 씨가 김 씨 생활의 평온을 해친 점이 인정된다"며 "부부지간이라도 각자의 주거 및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않고 살 기본적 권리를 존중하고 침해하지 않을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구체적으로 이 씨가 부인과 처가로부터 각각 100m 이내에 접근하지 말아야 한다고 결정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남편이 자녀들에게까지 접근하지 못하게 해 달라는 김 씨의 신청은 "이 씨가 자녀들의 친권자이고 양육과 관련해 상대방의 권리를 제한하는 것은 가사소송법상 절차로 가능하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울러 김 씨는 남편이 접근금지 결정을 어길 때마다 일정한 액수의 배상금을 지급하도록 정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법원은 이 또한 "향후 위반할 때 별도의 절차를 통해 다시 신청하라"며 기각했다.

박 부장판사는 "부부간의 법률상 동거 의무와 개인의 인격권이 상충하는 경우이기는 하지만 이미 이혼 소송이 제기된 마당이고 신청인에게도 최소한의 평온을 누릴 권리가 있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서울연합뉴스) 차대운 기자 setuz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