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급여가 내가 받은 월급의 10분의 1도 안된다는 게 말이 됩니까?"

27일 오전 10시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 있는 강남 고용지원센터 상담 창구.상담을 받던 50대 남성이 창구 직원을 향해 큰 목소리로 항의했다. 이유를 물어보자 분을 삭히지 못한 목소리가 돌아왔다. "지난달 실직했는데 그때 월급이 2000만원가량이었습니다. 실업급여가 평균 연봉의 50%라고 해서 1000만원쯤은 받을 것으로 생각하고 왔는데 110만원이라뇨.화가 안나겠습니까?" 실업급여 상한액이 하루 4만원이라는 점을 미처 파악하지 못해 생긴 해프닝이었다. 강남 고용지원센터에서 이런 소란은 별로 낯설지 않다. 실직자들이 크게 늘어난데다 강남 소재 기업들에 다니던 고액 연봉자들이 많은 강남 주민들이 이용하다 보니 실업급여에 불만을 터뜨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노동부가 운영하고 있는 전국 82개 고용지원센터에 경기침체로 고용 지원금이나 실업급여를 신청하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규모가 가장 큰 강남고용지원센터도 마찬가지다. 국내 대표기업들이 몰려 있는 강남 · 서초구를 관할하다 보니 피보험자 수가 국내 전체의 10.1%에 달해 고용지원금을 문의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때문에 강남고용지원센터의 지원금 현황은 대한민국 실업난을 가늠하는 바로미터 역할을 한다는 지적이다. 강남고용지원센터 정정식 소장은 "1분기 실업급여 신청자가 전년 동기 대비 50% 이상 늘었고,고용 유지지원금 신청 규모는 무려 10배가량 늘었다"고 밝혔다. '대한민국 부촌 1번지' 강남도 불황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것이다.

이 센터 고용보험 해지 · 등록 부서에는 관할지역 소재 기업들로부터 걸려오는 전화벨이 쉴새없이 울려댔다. 팩스로 들어온 서류들도 수북히 쌓여있었다. 기업들이 직원 퇴출 사실을 통보해 온 서류들이다. 이 센터 창구직원은 "오후 2~3시 정도에는 실직 급여 신청자들이 몰려 10~20분 이상 대기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경기가 침체되면서 바뀐 대표적인 풍경은 실업급여 관련 항의가 크게 늘었다는 점이다. 스스로 회사를 그만두고는 '해고 당했다'며 실업급여를 타러 왔다가 언쟁을 빚는 사례가 흔하다. 예전에는 기업들이 자진퇴사한 직원을 '해고'로 바꿔 신고하기도 했다. 실업급여를 탈 수 있게 배려한다는 차원이다.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기업들은 강제적으로 감원하지 않으면 고용유지 지원금을 탈 수 있기 때문에 자진퇴사한 실직자들이 고용지원센터에 해고당했다고 신고하더라도 이를 부인한다. 자진퇴사 사실이 밝혀진 실직자들은 "내가 낸 돈인데 왜 안돌려주냐"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고급 승용차나 외제차를 끌고 실업급여를 신청하러 왔다가 주차장이 작다고 항의하는 경우도 있다. '그깟 푼돈 안받는다'며 문을 박차고 나가는 경우도 흔히 목격된다.

'구직난'보다 '구인난'이 심하다는 점도 강남 고용지원센터의 특징이다. 업체가 요청한 구인 건수는 매월 늘어 3월에는 5000건에 달했다. 구직 신청자(3827명)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정 소장은 "구직자들의 눈높이가 여전히 높은 것 같다"며 "아무 조건없이 일자리를 알아봐달라고 와서는 막상 기업 면접을 보면 '교통편이 불편하다''퇴근시간이 늦다'며 발을 빼기도 한다"고 말했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