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8일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비자금 저수지'로 지목되고 있는 홍콩 현지법인 APC의 계좌에서 수상한 자금 흐름 내역을 다수 확보하고 수사를 확대 중이다.

검찰은 최근 홍콩 사법당국으로부터 건네받은 APC 계좌의 거래내역서 및 매출전표 · 송금영수증 등의 내역을 철야로 집중 분석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검찰은 이날 APC 관련 계좌자료 분석을 80% 이상 완료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 연철호씨에게 전달된 500만달러를 포함해 APC 계좌에서 인출된 돈의 최종 목적지에 대해 박연차 회장을 상대로 집중 조사할 방침이다.

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은 이날 "(APC가 소재한 조세회피지역) 버진아일랜드에 대해서도 살펴보고 있으며 500만달러를 포함해(수상한 돈 흐름) 전부를 보고 있다"며 "(권 여사가) 받았다는 돈이 이 돈과 겹치는지 아닌지는 아직 모른다"고 밝혀 수사가 정점으로 치닫고 있음을 시사했다. 검찰이 APC 계좌의 자금 흐름 추적에서 성과를 거둠에 따라 이번 사건의 최대 뇌관으로 꼽혀 온 APC 계좌에 대한 의혹의 전말이 조만간 밝혀질 전망이다.

검찰은 앞서 APC 계좌에서 박 회장이 배당금 형식으로 685억여원 이상을 빼돌린 정황을 포착했으며 "APC 계좌를 신주단지 보듯이 들여다보고 있다"고 밝혔다. 박연차 리스트와 관련해 제기되고 있는 의혹들에 대한 해답이 APC 계좌에 담겨 있는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는 것이다. 검찰은 박 회장이 수사과정에서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가도 확실한 증거를 내놓으면 누구에게 언제 돈을 준 사실을 정확히 밝히는 점을 감안,APC 계좌에 대한 객관적인 증거 확보에 총력을 기울여왔다. 홍 기획관은 "(노 전 대통령 측이 밝힌 돈은) 일시 장소 금액이 특정돼 있지 않기 때문에 차근차근 진실을 밝히겠다"며 "(이미 구속된 인사와 수사선상에 오른 인사들이 받은) 박연차 뭉칫돈의 성격과 출처에 대해서는 계속 확인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또 박 회장이 APC 계좌에서 빼돌린 자금과 이를 현금화한 시점을 밝혀내기 위해 박 회장과 관련된 거래 계좌 4700여개에서 오고간 3조5000억여원에 대한 분석도 거의 마무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이 건넨 로비자의 출처를 밝혀내기 위해서는 박 회장 관련 계좌의 자금 비축 상황과 입출금 내역을 일일이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검찰은 현금으로 돈을 받아 앞서 구속된 인사들과 현재 수사선상에 올라 있는 박관용 · 김원기 전 국회의장 등이 돈을 받은 시점을 전후해 APC 계좌와 4700여개 계좌 등을 비교 대조하며 분석 중이다.

검찰은 또 박관용 전 국회의장과 김원기 전 국회의장이 박 회장에게 각각 1억~2억원과 수천만원을 건네받은 혐의 사실을 확정하고 앞서 조사를 받은 서갑원 박진 의원 등과 함께 추후 일괄적으로 사법처리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검찰은 이와 함께 조만간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을 구속기소하면서 추 전 비서관이 노건평씨의 청탁을 받고 여권 실세 A,B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박 회장에 대한 세무조사 무마를 부탁했다는 혐의 사실을 밝힐 예정이다. 홍 기획관은 "필요한 부분을 확인했으며(추 전 비서관과 박 회장의) 진술도 받아냈다"고 말했다.

검찰은 박 회장으로부터 2005~2006년 불법 자금 3억~4억원을 받은 혐의로 정상문 청와대 전 총무비서관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키로 했다. 검찰은 이 돈이 권 여사가 정 전 비서관을 통해 박 회장에게 받은 십수억원과는 별개로 '개인 비리'라고 설명했다. 검찰은 정 전 비서관에게 포괄적 뇌물수수 혐의 혹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그를 구속한 뒤 박 회장에게 받아 권 여사에게 건넨 십수억원과 박 회장이 연씨에게 건넨 500만달러,박 회장 ·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과의 '3자 회동' 등에 대해 집중 조사하는 한편 연씨도 조만간 소환 조사할 방침이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