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 달러 환율이 급락하고 있다. 지난달 6일 장중 한때 달러당 1597원까지 치솟았던 환율은 이후 급락세로 전환,1300원대 초반으로 떨어졌다.

환율 하락과 함께 국내 금융시장을 짓누르던 '3월 위기설'은 실체가 없는 것으로 판명됐다. 원자재 수입 비중이 높은 기업들의 비용 부담도 크게 줄어들게 됐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환율 급등만큼 환율 급락도 경제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수출 의존도가 높은 경제 구조를 고려하면 일정 수준 이상의 고환율이 지속되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다고 분석하고 있다.

◆환율 하락…위기설 해소

그간 환율이 비정상적으로 높았다는 점에서 환율 하락은 그 자체로 호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임지원 JP모건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환율이 급등하자 해외에서 한국 경제를 불안하게 바라보는 시각이 강화됐고 이것이 다시 환율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며 "환율이 떨어지면 해외의 부정적인 시각이 사라지면서 한국 경제에 대한 위기설도 제기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항공사와 정유사 등 원자재 수입 비중이 큰 기업 입장에서는 환율 하락만큼 반가운 소식이 없다. 이들 업종은 항공유와 원유 수입 비중이 높아 환율에 따라 실적이 판가름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대한항공의 경우 올해 원 · 달러 환율을 1200원으로 가정하고 사업계획을 짰는데 환율이 1500원으로 오를 경우 이로 인한 손실만 6000억원에 이른다. 정유업계는 환율이 10원 오를 때마다 700억~800억원의 추가 손실이 발생한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국제유가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이 지난해보다 하락했지만 환율 상승으로 기업의 비용 부담은 오히려 늘어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신상철 중소기업연구원 경제분석실장은 "지표상 원자재 가격은 많이 떨어졌지만 기업이 당장 필요로 하는 완제품 가격에는 아직 반영되지 않고 있다"며 "그런 상황에서 환율이 6개월 사이 50%나 올랐으니 기업의 부담이 얼마나 크겠느냐"고 반문했다.

환율이 계속 상승할 경우 외환파생상품 관련 손실도 불어나게 된다. 이준재 한국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원 · 달러 환율이 1500원이면 상장 제조업체의 파생상품 평가손실이 68조원에 이른다"고 추정했다. 이 연구위원은 "기업의 파생상품 손실이 늘어나면 은행들의 부담도 커진다"며 "환율이 100원 상승할 때마다 은행의 평균 자기자본이익률(ROE)은 0.7%포인트 하락한다"고 분석했다. 환율 하락은 상당수 기업과 은행에 반가운 소식이다.

◆환율 급락…수출경쟁력 하락 우려

하지만 최근 원화 환율이 급격하게 떨어지자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 고환율이 한국 경제에 유리한 면이 있다는 것이다. 환율이 높으면 일반적으로 수출기업이 가격 경쟁력을 갖게 돼 수출에 유리한 반면 수입품 가격이 상승하면서 내수 경기에 불리한 것으로 분석된다. 수출 의존도가 매우 높은 한국으로서는 환율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높게 유지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기계산업팀장은 "환율이 하락하더라도 글로벌 경기 회복 속도보다 앞서가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했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인한 수출 물량 감소를 환율 상승에 따른 가격 효과로 방어해야 하는데,글로벌 경기 회복 속도보다 빠르게 환율이 떨어져 수출기업의 수익성이 악화되면 경기 회복이 그만큼 더뎌질 수 있다는 얘기다.

원화 가치가 하락(환율 상승)한 반면 엔화 가치는 상승하면서 해외에서 일본 기업들과 경쟁관계에 있는 국내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유리해진 점도 고마운 일이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원화 가치가 엔화 대비 10% 떨어질 경우 수출 증가율이 2.9%포인트 높아진다.

고환율은 해외여행 수요를 줄이고 외국인 관광객을 늘리는 효과도 있다. 해외여행과 유학 · 연수 등이 늘어나면서 줄곧 적자를 기록했던 여행수지는 올해 들어서는 2월까지 3억9000만달러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오상훈 SK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환율이 높으면 해외여행이 줄어들고 그 중 일부가 국내 여행 수요로 대체돼 내수 경기에도 일부 도움이 된다"며 "환율이 지나치게 떨어질 경우 해외 소비가 촉진돼 내수 침체를 가속화시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오 센터장은 또 지나치게 빠른 환율 하락이 주식시장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환율 하락은 달러로 환산한 한국 주식의 가격이 비싸지는 것을 의미하는데 환율이 지나치게 떨어질 경우 외국인의 주식 투자가 줄어 국내 주가 회복이 늦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글로벌 경기가 완연한 회복세로 접어들기 전까지는 국내 기업의 주식이 어느 정도 저평가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 유리하다"고 진단했다.

◆"원 · 달러 1100~1200원대 적정"

금융시장의 불안 심리를 자극하지 않으면서 수출 기업의 경쟁력도 유지할 수 있는 환율은 얼마일까. 이 문제에 대한 명쾌한 답변은 없다. 다만 경상 및 무역수지와 각국의 물가,소득수준과 구매력 등을 감안해 적정환율을 추정할 뿐이다. 대부분 전문가들은 달러당 1100~1200원대에서 균형을 찾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금융연구실장은 "각 경제주체의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환율이 어떻게 되는 것이 좋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며 "다만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임을 감안하더라도 환율이 지금보다 100~200원은 더 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구본관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도 "환율은 느린 속도의 하락세를 보이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며 "환율 하락 시 수출 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 우려되지만 1100~1200원대까지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