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에게 50억 원을 건넨 것으로 드러난 라응찬 신한금융회장이 50년 금융인생에서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돈의 용처가 불법적인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정.관계 로비 의혹 사건에 라 회장의 이름이 오르내린 것만으로도 그의 금융 인생에 큰 흠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검찰이 50억 원의 용처에 대해 가야 C.C지분 투자를 위한 것이라고 밝혔음에도 좀처럼 의혹은 풀리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라 회장 본인이 `불법적인 용도'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을 뿐 50억원의 성격을 시원하게 밝히지 않고 있어 온갖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 검찰 "가야C.C 지분 투자용"
검찰은 31일 라 회장이 2007년 4월에 경남 김해의 가야 C.C 지분 5%를 인수해달라며 박 회장에게 신한은행 수표로 50억 원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금융권에 따르면 가야C.C는 1994년 재일교포 40명이 설립한 골프장인데, 과다한 부채 등으로 경영난을 겪자 재일교포 주주들이 신한지주를 찾아와 골프장 처분을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신한지주는 신한캐피탈을 통해 1천억 원 규모의 사모펀드(구조조정조합)를 만들었고, 신한캐피탈은 여기에 910억 원을 투자해 가야 C.C 지분 75%를 인수했다.

인근 정산 C.C를 소유한 박 회장도 가야 C.C에 관심을 보이며 지분에 투자했다.

이때 박 회장은 라 회장에게도 지분 투자를 권유했고 평소 박 회장의 투자 수완을 믿었던 라 회장이 50억 원을 건넸다는 것이다.

라 회장과 박 회장은 은행장과 거래 기업 대표 관계로 20년 가까이 친분을 쌓아왔기 때문에 신한지주 안팎에서도 이러한 시나리오가 가장 유력한 것으로 제기됐었다.

문제는 지분투자에 쓰여야 할 돈이 박 회장 계좌에 아직 거의 그대로 남아 있는데다, 박 회장이 그 돈의 일부를 찾아 그림 2점을 샀다는 점이다.

구입한 그림은 정산 CC에 보관돼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한지주 측도 왜 지분투자가 이뤄지지 않았는지 등에 대해서는 "라 회장과 박 회장 간의 사적 부분"이라며 명쾌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 LG카드 인수 로비 의혹
이에 따라 50억 원의 용처를 둘러싼 의혹은 가시지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라 회장이 LG카드 인수 로비를 위해 50억 원을 전달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됐으나 그 가능성은 매우 낮은 것으로 금융권은 보고 있다.

박 회장의 계좌에 돈이 입금된 시점은 당초 알려진 대로 2006년이 아닌 2007년이기 때문이다.

LG카드를 둘러싸고 치열한 인수전이 펼쳐진 시점은 2006년이었다.

그 당시 주관사인 산업은행은 공개입찰 방식으로 LG카드 매각을 추진했으며 신한금융 이외에 하나금융, 농협 등이 인수전에 참가, 가장 높은 응찰가를 써낸 신한금융이 결국 LG카드를 품에 안았다.

신한지주 관계자는 "당시 신한과 하나금융이 써낸 응찰가가 주당 70원 차이밖에 나지 않을 정도로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다"며 "로비가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당시 인수전을 진두지휘했던 산은의 전 고위 관계자도 "투명한 경쟁이었다"며 로비 의혹을 일축했다.

또 아무리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라 회장이지만, 인수 로비를 위해 회사 자금이 아니라 사재를 털었다는 것 역시 억측이라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 휴켐스 인수 관련설
신한은행과 신한캐피탈이 박 회장이 2006년 5월 농협 자회사인 휴켐스를 인수할 당시 박 회장측 컨소시엄에 참여한 것과의 관련성도 일부 제기되고 있다.

라 회장은 실제로 박 회장의 휴켐스 인수를 도왔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 수사를 했던 검찰도 범죄 혐의가 입증될 만한 단서를 찾지 못했고, 라 회장이 박 회장의 인수를 도왔다면 돈은 박 회장에게서 라 회장 쪽으로 건네져야 하는데, 그 반대여서 정황 상도 맞지 않는다.

신한지주 측은 "당시 휴켐스 인수는 수익률이 굉장히 좋은 투자여서 각 은행이 서로 참여하려고 했었다"며 "결국 신한 컨소시엄과 지방은행 컨소시엄이 치열한 경쟁을 벌였고 입찰가를 최고로 쓴 신한 컨소시엄이 최종 인수했으며 우리는 투자자금을 회수하고 이미 나왔다"고 말했다.

◇ 50억원의 출처는
50억 원의 출처에 대해서도 의문이 남는다.

20년 가까이 은행 최고경영자 자리에 있었기에 라 회장이 상당한 재산가로 알려져 있지만 50억원이나 되는 거액을 박 회장에게 아무 이유없이 맡겼을리는 없을 것이다.

검찰은 이날 "라 회장 본인에 대해 수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본인의 돈인지는 알 수 없다"며 "(돈의 흐름을) 따라가 보니 10년 전에 들어온 자금 같다"고 말했다.

라 회장은 선린상고 졸업 후 1959년 농업은행에서 은행원으로 첫발을 내디딘 뒤 75년 대구은행 창립과 함께 자리를 옮겼고 77년 재일교포들이 세운 제일투자금융 이사로 영입됐다.

이후 그는 1982년 신한은행 창립부터 은행장 3기 연임과 부회장 2년, 지주회사 회장 3기 연임을 통해 19년 동안 신한의 CEO(최고 경영자) 자리를 지켜왔다.

그러나 라 회장이 스톡옵션을 받은 것은 2001년 신한지주 설립 이후부터다.

신한지주 관계자는 "오랫동안 금융회사 CEO를 한 만큼 그만한 돈은 모을 수 있었을 것으로 본다"며 "개인 자금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재일교포 자금이 일부 흘러들어 갔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fusionj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