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닷컴]모텔 주차장에 세워진 차의 번호판을 가려주는 행위가 불법인지를 놓고 법원의 1ㆍ2심 판결이 엇갈렸다.불법이라는 항소심 판결이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되면 번호판을 가려주는 숙박업계의 관행에 큰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31일 서울중앙지법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역삼역 근처 Y모텔은 주차장 안에 세워진 투숙객의 차 번호판을 직사각형 모양의 판으로 가려줬다.주차장 입구에는 큰 발이 쳐져 있지만 땅바닥으로부터 약 1m 높이까지는 틔어 있어 차 번호판이 모텔 밖에서 보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경찰은 지난해 10월 13일 불시단속을 벌여 이 모텔 종업원 이모씨를 단속했다.차량 2대의 번호판을 가린 것에 대해 ‘자동차관리법’을 위반한 혐의를 적용했다.자동차관리법 제10조는 “번호판을 가리거나 알아보기 곤란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같은 법 82조는 이를 어겼을 때 1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경찰은 이씨를 즉결심판에 넘겼고 5만원형을 선고받은 이씨는 불복해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이씨에게 적용된 자동차관리법 조항은 주로 과속이나 불법주차 단속을 피하려고 번호판을 일부러 가린 경우에 적용돼 왔기 때문에 모텔 주차장의 사례로 정식 재판을 받기는 이씨가 처음이었다.

1심 재판을 맡은 당시 서울중앙지법 형사14단독 안성준 판사는 “자동차등록법은차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제정된 것으로 처벌조항도 이런 입법 취지에 맞게 해석해야 한다”며 이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안 판사는 “자동차를 관리하고 안전을 확보하는데 별 장애가 없는 장소에서 벌어진 행위까지 처벌조항을 적용하면 범위가 무차별적으로 확대될 수 있다”며 “피고인은 이용자의 요청에 따라 사생활 보호를 목적으로 번호판을 가린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검찰은 “숙박업소는 범죄자들이 은닉처로 자주 이용하는 곳으로,범죄자들이 신분을 감추기 위해 번호판을 가려달라고 요청할 가능성이 큰 만큼 모텔도 자동차의 효율적 관리를 저해할 수 있는 장소”라는 이유를 들어 항소했다.

2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4부(김필곤 부장판사)는 처벌조항을 엄격히 해석해 1심을 깨고 유죄를 인정,이씨에게 벌금 5만원을 선고했다.2심 재판부는 “자동차관리법은 번호판을 가리는 금지 행위에 대해 장소적 제한을 두지 않았고 행정형벌의 일반적 특징에 비춰볼 때 일반적 위험성이 있는 행위라면 모두 처벌 대상이 된다고 해석해야 한다”며 검찰의 손을 들어줬다.

이씨가 2심 판결에 불복해 상고를 결정하면 모텔들의 자동차 번호판 가려주기 관행의 불법성에 관한 최종 판단은 대법원이 하게 된다.

서보미 기자 bm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