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요, 어떻게 될지는 모르죠. 지금이야 이러고 있지만 당장 내일부터 할 일이 없어져 집에서 쉬어야 하는데..."

25일 오전 경북 구미시 공단동 대우일렉트로닉스 구미공장 운동장에서 만난 한 근로자는 나직한 목소리로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다들 울고 있는 게 보이지 않느냐"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대우일렉트로닉스 구미공장은 꽃샘추위로 차가운 날씨 속에 이날 전 직원 370명이 모인 가운데 마지막 회식인 이른바 '쫑파티'를 열었다.

최근 대우일렉트로닉스가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연장조건으로 TV와 음향기기를 생산하는 구미공장을 폐쇄키로 결정해 구미공장 직원들은 이날 모두 사직서를 제출했다.

세계적 불황으로 지난해 하반기부터 수출물량이 월 15만대에서 5만대 수준으로 줄었고, 급기야 지난 4일부터 공장 가동이 중단된 상태여서 대다수 직원들은 이런 날이 올 줄 알고는 있었다.

한 직원은 "산소 호흡기에 의존해 생명을 연장하던 환자나 다를 바 없었기 때문에 언젠가 산소 호흡기를 떼면 곧바로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막상 공장 산소 호흡기를 떼는 순간이 왔을 때의 떨림은 감출 수가 없는 법.

23년째 이 공장에서 근무했다는 한 직원은 "사회에 발을 내디디면서 처음 입사해 쉰 살이 다 되도록 내 청춘을 바친 회사인데 어찌 감회가 없겠느냐"며 "냉장고나 세탁기와 달리 환경이 급변하는 TV는 기술개발이 이뤄지지 않으면 안 되는데 회사가 어려워 기술개발에 투자를 하지 못해 경쟁에서 밀렸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지금이야 370명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대우일렉트로닉스 구미공장은 옛 대우전자 시절인 1990년대 중반만 해도 근로자가 6천명에 달할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했다.

당시에는 연간 수출액이 구미에 있는 삼성전자나 LG전자보다 많아 구미 최대 수출업체로 꼽히기도 했다.

그러나 IMF 외환위기 시절에 대우그룹이 공중분해되면서 워크아웃에 들어가게 돼 사세가 급격히 기울었고, 2005년 이후 추진된 세 차례의 매각 시도도 무산되면서 급기야 공장 문을 닫는 사태에 이르게 됐다.

공장 가동이 중단되기는 했지만 그동안 회사에 나와 자리를 지켰던 직원들은 내일부터 재택대기에 들어간다.

6월 말까지 기본급의 일부가 나오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실업자 상태가 되는 것이다.

직원들은 이런 불안감에도 불구하고 밝게 웃으며 운동장 한쪽에 마련된 천막 안팎에 삼삼오오 모여 기념사진을 찍거나 서로의 손을 맞잡은 채 서로 "그동안 수고했다"며 행운을 빌었다.

대우일렉트로닉스 구미공장 소속으로는 마지막으로 마주대하는 만큼 직원들은 찬 날씨 속에서도 차가운 술잔을 기울이며 지난 추억을 되새겨보기도 했다.

그러던 중 천막 속에서 술잔을 기울이던 일부 남자 직원들은 끝내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고, 밖에 서있던 여직원들도 눈물을 흘렸다.

술기운과 눈물기운에 붉어진 눈시울로 동료 직원들은 먼 산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보통 공장 문을 닫게 되면 노조를 중심으로 직원들은 회사측으로부터 하나라도 더 받아내기 위해 격한 싸움을 벌이거나 지루한 소송에 들어가기 마련이지만 이 공장 노조는 모두 단념하기로 했다.

1983년 대우에 인수되기 전인 대한전선 시절부터 29년째 이 공장을 다녔다는 구미공장 노조지부장 지창백(49) 씨는 "당초에는 본사로 가서 투쟁을 벌일까도 생각했지만 직원들의 이미지가 나빠져 다른 곳에 취업을 하지 못할까봐 포기했다"며 "직원들이 다른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격한 감정을 감추지 못해 눈시울이 붉어진 채 직원들과 악수를 하며 술을 주고받던 김준현 공장장은 "막상 이렇게 되니 눈물밖에 안 난다"며 "분사를 해서 절반이라도 재취업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추위를 참지 못한 듯 한 직원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거 되게 춥네"라고 말했다.

목련과 개나리가 만발한 봄에 꽃샘추위가 찾아온 어느 날이었다.

(구미연합뉴스) 손대성 기자 sds123@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