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숟가락만 더 먹어." "싫어." "돌아다니지 말고 빨리 먹어야지." "싫어 싫어." "입에 물고만 있으면 어떻게 해.얼른 삼켜." "싫어,안 먹어…."

밥을 먹이려는 엄마와 안 먹겠다는 아이.거의 전쟁에 가깝다. 엄마도 사람인지라 상황이 이쯤 되면 머리 끝까지 열이 오르며 절로 손바닥이 아이 등짝으로 향한다. 춘곤증에다 학교나 유치원 등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느라 스트레스를 받아 자칫 아이의 입맛이 떨어지기 쉬운 봄철에는 엄마가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 아이 발육을 위한 영양섭취는 물론 부모와 자녀의 좋은 유대관계,아이의 적극적인 생활태도를 유도하려면 아이의 밥 투정을 효과적으로 다뤄야 한다.

아이가 밥 투정하는 가장 큰 이유는 부모가 어떻게든 먹이려 하기 때문이다. 부모는 한숟갈이라도 더 먹이려고 안달복달하거나,밥먹으라고 잔소리를 하거나,밥을 떠먹여주거나,밥 잘 먹으면 원하는 것을 사주겠다는 식으로 아이를 대해서는 안 된다는 게 육아 전문가의 조언이다. 몸이 아프지 않는 한 배가 고프면 당연히 밥을 먹게 돼 있으므로 부모는 겉으로 아이의 식사 여부에 관심이 없는 척 해야 한다.

밥상을 차리고 한두 차례 불렀는데도 아이가 식탁에 앉지 않으면 다른 식구끼리 밥을 먹도록 한다. 식사를 끝낸 지 30분이 넘었는데도 아이가 밥을 먹지 않으면 상을 치우는 게 바람직하다. 아이가 밥을 먹지 않는다고 해서 걱정되는 마음에 간식을 주면 더욱 밥과 멀어지게 되므로 삼가야 한다. 아이가 과자 사탕 초콜릿 등 단맛에 길들여지면 금방 배가 불러서 상대적으로 담백한 밥과 반찬을 기피하게 된다.

식사 시간의 분위기도 중요하다. 밥 먹을 때마다 상습적으로 부부끼리 다투거나 아이를 혼내거나 하면 아이는 밥 먹는 일이 끔찍하게 느껴지게 마련이다. 지독히 밥을 먹지 않는 아이라면 일단 밥과 친해지게 하는 것이 급선무이므로 "골고루 먹어라" "빨리 먹어라" "깨끗이 비워라" 같은 말도 미뤄두는 게 좋다. 친구끼리 같이 밥을 먹게 하면 또래 간에 묘한 경쟁 분위기가 생겨 평소 밥을 먹지 않다가도 밥숟갈을 들게 된다. 적당한 운동은 식욕을 높이지만 지나치면 오히려 식욕이 떨어지므로 식전 운동은 피하는 게 낫다. 평소 아이가 좋아하는 캐릭터가 그려진 식기를 사용하는 등 아이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도 좋은 식욕촉진책이다.

질병에 의해 식욕이 떨어지는 경우엔 조기에 이를 발견해 치료해줘야 한다. 우선 어제까지만 해도 잘 먹던 애가 갑자기 음식을 피한다면 감기 인플루엔자 후두염 등 감염성 질환에 걸린 것을 의심할 수 있다. 증상이 나타나지 않더라도 하루 이틀 아이의 상태를 관찰해 봐야 한다. 구내염(혓바늘)이나 충치가 생기면 음식물이 닿을 때 통증을 느껴 음식을 제대로 씹지 못한다. 유기농 식품만을 고집하거나 집안에서 애완동물을 키운다면 기생충에 감염됐는지 알아본다. 가능성이 있으면 정기적으로 구충제를 먹인다.

위나 장의 기능이 떨어지면 소화액 분비가 감소되거나,변비가 일어나거나,방귀를 자주 뀌거나,배가 빵빵해지면서 식사량이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난다. 한의학에서는 타고난 소화기능이 약하거나 소화기에 열이 뻗칠 때 밥을 먹지 않게 된다고 본다. 물을 별로 마시지 않고 얼굴이 누런 빛을 띠고 성격이 예민하며 설사 구토 변비 체증이 잦고 뛰어놀고 나서 쉽게 지친다면 소화기가 약한 전형적인 증상이다. 이런 경우에는 단 음식을 줄이고 인삼차 둥굴레차를 마시며 자주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

반대로 더위를 잘 타고 땀을 많이 흘리며 찬물을 좋아하고 혀가 붉은 편이며 코딱지가 많이 생기고 코피가 잘 나고 입냄새가 심하다면 소화기에 열이 많은 것이다. 이 땐 단 음식과 인스턴트 식품을 줄이고 쓴맛 채소를 즐기며 쌀밥보다는 보리밥이나 현미밥을 먹도록 권장해야 한다. 이 밖에 축농증 비염 중이염 천식 결핵 등이 아이의 식욕을 감소시킨다.

학업에 따른 경쟁 스트레스,엄마의 지나친 식사강요에 따른 심적 부담,이성 친구가 생김으로써 나타나는 체중증가에 대한 두려움도 어린이 식욕저하의 중대한 원인이다. 만성질환과 스트레스에 의한 식욕저하는 장기화돼 성장장애나 두뇌발달 저하로 이어질 수 있어 정밀검사나 전문가 상담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 씹지 않고 삼키거나 국수 빵 등 무른 음식만 찾거나 밥을 빨아먹듯 먹거나 우유나 두유만 마시는 것은 잘못된 식사습관이므로 씹는 훈련을 시키고 간식을 줄여줘야 한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

도움말=최승용 마포 함소아한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