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에 인지하고도 공론화 통한 해결 막아"

민주노총 핵심 간부의 성폭력 사건과 관련해 일부 노조 간부들의 `조직적 은폐 조장 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자체조사 결과 드러났다.

민주노총 진상규명특별위원회는 13일 노조 본부에서 '성폭력 사건 조사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열어 "가해자 등 이석행 위원장 수배ㆍ은닉 관련 대책회의 일부 관련자들이 성폭력 사건 초기에 사건 발생 사실을 인지했음에도 그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채 공론화를 통한 사건 해결을 막았다"고 밝혔다.

특위는 이들 관련자들이 결국 조직적 은폐를 조장했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특위는 또 "피해자 소속 연맹(전교조)의 정모씨 역시 조직의 최고 책임자로서 피해자의 상황과 고통에 공감하고 책임을 통감하기보다는 정치적 파장 등을 언급하며 피해자의 고통을 가중시켰다는 점에서 응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위는 그러나 이러한 은폐 시도가 노조 차원이 아니라 가해자를 포함한 사건 관련자 5명에 국한돼 이뤄진 것이라고 강조하며 이들에 대한 징계를 집행부에 권고했다.

특위는 "여러 정황과 폐쇄회로(CC)TV 등 실증자료를 기초로 볼 때 범행 당시 만취 상태였다는 가해자 김모씨의 주장은 신빙성이 떨어진다"며 "김씨는 모멸감을 주는 형식적 사과와 지속적인 만남을 통해 피해자를 더 큰 고통으로 몰아넣었다"고 비판했다.

사건이 노조 내부에 공식적으로 알려진 뒤 진행된 진상조사위의 활동과 관련, 특위는 "성폭력 사건을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일로 축소해 접근, 이번 사건의 은폐 조장행위에 대한 조사를 외면하는 결과를 빚었다"고 지적했다.

또 "진상조사결과의 공식 처리 과정이 보름 가까이 늦어진 것은 노조와 피해자측 간에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인정할 수 있으나 결국 사건이 장기화되면서 은폐 의혹이 증폭된 점은 아쉬운 부분"이라고 꼬집었다.

이석행 전 위원장 은닉혐의 수사와 관련해서는 피해자의 명시적 동의없이 일방적인 진술을 강요하고 압박한 점이 발견됐다고 특위는 밝혔다.

이와 관련, 특위는 "일방적이고 추상적인 수준에서의 조직 보위 논리는 개인의 삶과 언제든지 충돌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민주노총의 깊은 반성과 성찰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특위는 그러나 민노총에서 성폭력 사건의 무분별한 언론유포가 있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진상조사 결과 뚜렷한 혐의를 확인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다만 어떤 이유에서든 사건의 올바른 해결이 지체되고 성폭력 문제가 가십거리로 떠도는 구조가 혁신되지 않을 경우 이런 사태가 언제든지 반복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특위는 덧붙였다.

또 성폭력 재발을 막기 위해 ▲성평등 미래위원회(가칭) 설치 ▲성폭력 방지를 위한 체계적인 교육방안 마련 ▲성차별적 조직문화 혁신을 위한 실천방안 마련 ▲성폭력 사건 조사의 신뢰성ㆍ독립성ㆍ전문성 제고 방안 마련에 나설 것을 권고했다.

한편 피해자 측은 민주노총의 자체 조사 결과 발표와 관련한 대책회의를 이날 오후 열어 대응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피해자 측은 그동안 노조가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하려했다고 주장하면서도 검찰 조사에서는 민주노총의 자체 조사 결과를 보고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이에 대한 진술을 거부해왔다.

(서울연합뉴스) 전성훈 기자 cielo78@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