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하반기 이후 달러ㆍ엔 등 주요 통화에 비해 원화 값이 크게 떨어지면서 세계 정상 수준의 품질을 갖추고도 상대적으로 싼 제품과 서비스를 찾아 외국인들이 끊임없이 한국으로 몰려들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관광.쇼핑객들뿐 아니라 비즈니스 차원에서 '큰 손'들의 한국 제품 구매까지 잇따라, 불황 속에서 그나마 '환율 효과'가 우리 경제·산업에 큰 버팀목이 되고 있다.

◇ 부품구매.투자 문의 줄이어..수주 17배 늘기도

10일 업계에 따르면 LS전선은 올해 들어 지금까지 굵직한 건만 따져도 베트남, 영국 등에서 무려 7천만달러어치의 해외 공급 계약을 따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400만달러와 비교해 17배를 웃도는 규모로 '글로벌 경기 침체'란 말이 무색할 정도다.

물론 기본적으로 우리 업체의 기술적 역량이 반영된 쾌거지만, 최근의 유리해진 환율 상황도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게 업체 측의 분석이다.

LS전선 관계자는 "특히 유럽 시장에서는 지금까지 1차 벤더는 유럽업체, 2~3차 벤더는 인도·중국 업체가 독점해왔으나, 최근 환율 효과로 우리 기업의 기술에 가격 경쟁력까지 더해지자 인도·중국 등을 밀어내고 수주하는 경우가 크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연초 기대 이상의 성과에 고무된 LS전선은 해외 부분 매출 목표를 작년대비 60% 이상 늘려 잡았다.

생존을 위한 원가 절감에 혈안인 BMW, 메르세데스-벤츠, 도요타 등 세계적 완성차 업체들도 환율 효과를 등에 업은 한국 부품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 2일 BMW그룹 헤르베르트 디이스 구매담당 총괄 사장은 현대모비스 등 국내 부품업체들을 방문, 기술·제조 현황을 둘러보고 구매 협의를 진행했다.

메르세데스-벤츠도 최근 원화가치 하락을 고려, 한국산 부품 구매 확대를 검토하고 있고, '엔고(高)'로 수익성이 나빠진 도요타 등 일본 메이커들 역시 한국 부품업체 대상 구매 설명회를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자국산 부품을 고집해온 일본 업체들의 태도 변화는 다음 달 열릴 '한일 부품소재 조달공급 전시회' 참여 열기에서도 나타난다.

현재까지 60개가 넘는 일본 기업이 참가 신청을 마쳤고, 140여개 부스를 예약했다.

당초 예상했던 '30개사, 50개 부스' 규모를 훌쩍 뛰어넘는 '인기'로, 그만큼 현재 일본 기업들이 한국 부품에 관심이 많다는 얘기다.

부품뿐 아니라 해외 기업·기관의 한국 내 부동산 등 자산 투자도 활발하다.

특히 일본 입장에서는 작년 9월 100엔당 900원 선이었던 엔화 값이 최근 1천600원에 육박하면서, 한국 자산을 절반 가격에 살 수 있는 상황이다.

코트라(KOTRA)에 따르면 지난 5일 일본의 25개 금융기관 및 부동산개발업체들은 서울 염곡동 코트라 본사를 찾아 투자 문제를 협의했다.

이 가운데 부동산투자사 바나월드 인베스트먼트 조합은 송도 테크노파크 등 부동산개발 프로젝트에 대한 30조원 규모의 투자의향서를 체결하기도 했다.

코트라 관계자는 "작년 동기대비 80%나 오른 원·엔 환율 때문에 '저비용 투자'가 가능해지자 최근 일본 금융계 투자회사들이 대거 한국을 찾고 있다"고 전했다.

◇ 명품관·호텔, 대형마트까지 일본인 '홍수'

유통업계 역시 '환율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명동 입구에 있는 롯데백화점 본점의 경우 지난 1~2월 일본인 구매액이 전체 월 매출의 7%를 차지했다.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비중이 무려 12배로 늘었고, 특히 명품관 에비뉴엘의 경우 일본 관광객의 구매 비중은 30%에 달했다.

인근 신세계백화점 본점 역시 지난달 매출의 7.4%를 일본인들이 책임졌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통계들로 미뤄, 최근 롯데·신세계 본점을 포함한 명동과 소공동 일대에서 일본인들이 한 달에 최소 100억원이 넘는 돈을 쓰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일본 관광객들은 백화점뿐 아니라 대형마트에도 몰려들어 한국에서 싼값에 생필품까지 장을 보고 있다.

롯데마트 서울역점의 경우 지난 1월 일본인 구매액이 전체 매출의 10%인 20억원으로 집계됐다.

작년 같은 기간의 2배를 웃도는 규모다.

심지어 일본인들이 한국산 고추장을 '싹쓸이'하면서, 롯데마트 서울역점.롯데백화점 본점.이마트 용산점 등 일본인이 즐겨 찾는 3대 매장에서 CJ제일제당의 해찬들 고추장 제품 판매가 작년에 비해 90%나 늘었을 정도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 1월 해외로부터 한국을 찾은 사람은 모두 60만7천659명으로, 작년 같은 달보다 25.3% 증가했다.

늘어난 방문객 가운데 상당수가 환율을 쫓아 날아온 일본인 쇼핑 관광객으로 추정된다.

이 때문에 최근 서울 주요 호텔들도 예년 10~15%에 불과했던 일본인 투숙객 비율이 40~60%에 이르고 전체 투숙률도 높아지는 등 사상 유례없는 '환율 특수'를 누리고 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