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줄잡아 40여만명이 대학 문을 나섰다. 지난 1월 20대 취업자 수가 1년 전에 비해 20만명 가까이 줄어든 통계만으로도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이들 대학 졸업생이 직면한 현실이 얼마나 절망스러운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이미 구조조정의 거센 태풍 속에서 있는 일자리마저 날마다 사라져가고 있고,취업시장은 아예 꽁꽁 얼어붙었다. 지난달 졸업시즌의 대학가가 어느 때보다 썰렁했던 것도 그런 분위기의 반영이다.

정말 운 없는 '트라우마(trauma)세대'의 비극이다. 연세대 김호기 교수가 이름 붙인,중 · 고교에 다니던 10대 시절 외환위기로 부모의 실직과 부도 등을 겪더니 사회 진출을 앞둔 20대에 또다시 전대미문의 금융위기와 최악의 불황으로 거듭 좌절해야 하는 '외상(外傷)후 스트레스 장애'세대다.

상처를 극복하기 위한 그들의 최우선 목표는 '좋은 직장'이었다. 학점과 영어,자격증,해외연수,인턴 경험 등 '스펙'관리에 올인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그 보람을 기대하면서 이곳 저곳 입사원서를 내보지만 결과는 참담할 뿐이다. 결국 20대 비정규직 근로자의 대명사인 '88만원 세대'로의 전락이다.

어렵게 취직에 성공하더라도 고통이 끝나는 게 아니다. 일자리 나누기(잡 셰어링)를 위한 초임삭감의 굴레가 다시 씌워진 것이다. 턱없이 임금만 높았던 금융회사들은 1000만원대,대기업들도 몇백만원씩 깎이는 것은 예사다. 억울하기 짝이 없지만,찬밥 더운 밥 가릴 처지가 안되고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어쩌겠는가.

무엇보다 지금은 그렇게라도 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모든 상황이 너무 나빠지고 있다. 비정상적인 초임으로 야기됐던 전체 임금구조의 거품을 걷고,우리 경제의 고질병인 고비용 · 저효율 구조를 깨는 계기가 될 수 있는 측면도 있다.

그럼에도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없고,당장에는 '초임삭감 세대'의 등장이 또다른 사회적 양극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는 것이 문제다. 이들에 대한 임금인상률을 높이고 기존 직원의 고임금은 동결하는 방식으로 격차를 해소한다지만,단시간 내 기업경영이 크게 호전될 때 가능한 얘기다. 왜곡된 이중임금구조의 고착화를 피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것이 가져올 부메랑은 뻔하다. 이제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구분에 그치지 않고,기업 내 초임삭감 계층과 기존 고임금 계층의 양분(兩分)이다. 조직의 분열과 갈등은 필연이고,상대적 박탈감을 갖는 계층이야말로 파괴적인 계급투쟁의 에너지다. 그것이 기업의 경쟁력을 심하게 갉아먹고 사회혼란을 부추기는 요인임을 확인하는 데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계급화의 문제는 이미 현실이다. 최근 미국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는 유럽 사회의 최대 현안으로 '700유로 세대의 분노'를 손꼽았다. 25세 이하 청년 실업률이 평균 15%를 넘는 유럽 각국에서 월 700유로(130여만원)의 저임금 임시직에 종사하는 청년 세대를 지칭하는 말이다. 우리나라의 88만원 세대와 같다.

결국 모든 계층이 함께 고통을 나누는 양보없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잡 셰어링이라는 것도 모든 구성원의 임금삭감이 전제되지 않으면 '임금은 그대로,일은 적게'나 다름없고,초임삭감 또한 지금 공무원 공기업 금융회사 대기업의 노조가 여전히 기득권만 고집하고 있는 데 따른 미봉책이기 때문이다.

트라우마 세대의 연장으로 초임삭감 계층의 등장이 갖는 사회 · 경제적 의미와 파장에 대해서도 보다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안된다. 무엇보다 노조들이 지금 그토록 기득권을 지키려 애쓰고 있지만,이런 계급구조에서 언제까지 기득권이 조직 안팎으로부터 위협받지 않고 유지될 수 있을지,지킬 기득권이 끝까지 존재할 수나 있을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