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에게 가장 필요한 게 일자리 아닌가. 노조 간부들이 투쟁 구호만 외친다면 기업은 성장 동력을 잃고 일자리는 줄어든다. 기업의 성장과 고용창출을 위해선 노동운동가들의 마인드 변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일본 전기노련 야스히코 부중앙집행위원장)

일본 노동조합 간부들은 어용소리를 들을 정도로 친 경영계 마인드를 갖고 있다. 노조가 권력을 휘두르며 내몫만 챙길 경우 회사경영이 악화되고 일자리가 줄어 들기 때문이다.

야스히코 부위원장이 노동운동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일자리를 꼽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사용자로부터 3을 얻어 내려고 한다면 7을 양보해야지 10을 모두 획득하려고 떼를 쓰는 것은 노동운동이 아니다"고 강조한다.

세계노동운동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노동운동의 발상지인 영국을 비롯해 일본 독일 미국 등 전 세계에서 실용주의 운동기조가 확산되고 있다.

노조 지도자들은 조직장악을 위한 정치적 행동을 자제하고 일선 조합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생산적 복지,즉 일자리 창출에 눈을 돌리고 있다. 노동운동에 일대 혁신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신자유주의에 밀려 상대적으로 노동운동이 퇴조한 미국에서는 오래 전에 대립과 갈등의 노사관계를 접고 상생의 노사문화로 돌아선 상태다.

GE(제너럴일렉트릭),IBM,MS(마이크로소프트),모토롤라 등 초우량기업에선 노사가 공동으로 작업장을 혁신하고 일할 맛 나는 일터를 가꾸는 데 나서고 있다.

이런 흐름은 노동운동 강국으로 꼽히는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에서도 확산되고 있다. 이들 국가 노조들은 '고복지 저효율'의 문제점을 스스로 인정하고 정부의 개혁정책에 동조하고 있다.

중도우파정권의 스웨덴은 부유세를 폐지하고 질병급여를 감축하는 등 개혁이 한창이지만 노조의 반응은 오히려 담담하다.

스웨덴 노동계의 이런 자세는 노조권력을 휘두를 경우 고비용구조에 빠지고 경기가 침체돼 그 피해가 노조원들한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덴마크도 노동단체의 묵인 아래 복지시스템에 메스를 가한 상태다. 실업수당 수혜기간을 9년에서 4년으로 대폭 단축하는 등 실업자들이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기간을 줄여 버렸다.

이 개혁으로 실업률은 절반으로 줄었고 장기실업률은 70% 이상 감소하는 효과를 보고 있다. 덴마크에서는 특히 '유연-안정성(Flexi-Curity) 모델'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실제로 덴마크에선 직업이동이 무척 활발하다. 생애직장이동 횟수로 보면 덴마크는 6차례로 유럽 평균의 4차례보다 많다. 그만큼 직장이동이 잦다는 얘기다.

유럽국가 중 노사갈등이 비교적 심한 스페인에서도 역시 정치파업이나 막무가내식 이념투쟁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됐다.

이라크파병에도 스페인 노총은 반대입장을 표명하지 않는다. 노동계가 나설 일이 아니라고 판단한 때문이다. 한국의 민주노총이 이라크 파병,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반대, 미국 소고기수입반대 등 온갖 나랏일을 간섭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영국노총(TUC)의 경우 총파업을 지시한 사례는 1926년 한 번 뿐이다. 그 이후 지금까지 83년 동안 한 차례의 파업도 없었다. 시도 때도 없이 총파업 투쟁을 벌이는 민주노총과는 사뭇 다르다.

김정한 노동연구원 박사는 "세계 노동운동은 이념적 투쟁적 사고를 벗어 버리고 실리주의 노선으로 돌아선 지 오래됐다"며 "이젠 노동운동도 기업 생존에 눈을 돌리지 않으면 존재하기 힘든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