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극심한 경기 침체를 맞아 조세와 재정정책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본지는 '제43회 납세자의 날'(3일)을 맞아 지난달 27일 한국조세연구원 주관으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조세 · 재정정책 방향'을 주제로 좌담회를 가졌다. 좌담회에는 원윤희 한국조세연구원장,안종범 한국재정학회장(성균관대 경제학부 교수),윤영선 기획재정부 세제실장,권오봉 재정부 재정정책국장,백웅기 국회 예산정책처 경제분석실장 등이 참석했다.

▶사회(고광철 한경 부국장 겸 경제부장)=지금 가장 시급한 문제는 일자리 유지와 창출이다. 부동산 경기 침체도 풀어야 할 숙제다. 경기 부양을 위해서는 어떤 세제 지원이 필요한가.

▶윤영선 실장=정부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기업 투자 확대,서민층 지원을 위한 각종 세제 지원에 나설 계획이다. 일자리와 관련해서는 잡 셰어링(일자리 나누기) 과정에서 임금이 줄어드는 근로자에 대해 소득공제 혜택을 주려 한다. 부동산 경기 활성화를 위한 세제 지원도 추진 중이다.

▶백웅기 실장=감세도 중요하지만 그전에 실제 효과를 면밀하게 분석한 뒤 추진해야 한다. 미국도 각종 감세 정책을 내놨지만 '급하게 내놓다 보니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안종범 회장=부동산 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는 앞으로 조세보다는 규제 완화로 대처하는 게 맞다고 본다. 너무 빈번한 세제 개편은 부동산 경기에 도움이 안 된다.

▶윤 실장=약간의 오해가 있는 것 같다. 정부가 작년에 부동산 세제를 대대적으로 개편한 것은 세제 정상화를 위해서였다. 지금도 남아 있는 60% 세율 등은 조세원칙에도 맞지 않는다. 세율이 아니라 규제적 성격이 있다. 올해는 작년과 같은 대대적인 세제 개편은 추진하지 않겠지만 감세와 재정지출을 동시에 추진해 개인 소득을 보전하고 기업의 투자 의욕을 늘리는 데 주력할 것이다.

▶원윤희 원장=세제 개편의 방향은 앞으로도 민간의 경제 활력을 높이는 데 맞춰져야 한다. 물론 지금은 비상상황이라 경기 부양을 위한 감세가 필요하지만 기본적으로 과도한 세율은 경제 전반의 활력을 떨어뜨린다.

▶사회=각국이 경기 부양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바람직한 재정정책은.

▶원 원장=각국이 추진 중인 감세 및 재정정책을 보면 세 가지 원칙이 있다. 확실한 '타기팅(목표)'과 한시적이고,시의적절한 대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원칙들은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저소득층에는 소득 감소에 따른 보전을,고소득층에는 소비 진작을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

▶권오봉 국장=주요 선진국의 경기 부양 대책을 보면 세제 감면,재정지출 확대,유동성 공급 등을 조합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미국은 저소득층에 대한 세 감면과 사회간접자본(SOC) 지출에,일본은 저소득층 지원에,중국은 SOC 확충에 중점을 두고 있다. 정부는 추가경정예산을 어려운 계층 지원에 무게를 두고 준비 중이다.

▶사회=어느 분야에 재정지출을 늘릴 것인지도 고민해야 될 문제다. 한승수 국무총리도 최근 한경 밀레니엄 포럼에서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할 때 현장에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따지는 '보텀-업(bottom-up)' 방식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안 회장=맞는 말이다. 추경 편성 과정에서 여야 간 다툼이 많을텐데,규모는 나중에 정하더라도 우선 예산 투입 사업 순위를 정했으면 한다. 추경 규모를 놓고 싸우다 보면 실제 투입해야 될 사업을 못 찾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추경을 통해서는 즉각적인 효과를 보기 힘든 SOC보다는 소비 진작 효과가 큰 저소득층 지원에 무게를 두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백 실장=추경 편성과 관련해서는 중장기적인 재정 부담도 고려해야 한다. 경제 활성화와 재정 건전성의 상충은 어쩔 수 없는 문제지만 과도하게 재정지출을 늘리면 미래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사전예산심의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이듬해 예산안 제출에 앞서 그해 상반기에 미리 5년간의 중기 재정운용계획을 국회에 제출하게 하자는 것이다.

▶사회=국세청장들의 잇단 구속을 계기로 국세행정에 대한 전반적인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윤 실장=국세행정에 대한 접근 방식을 바꿔볼 필요가 있다. 성실한 사업자일지라도 주요 권력기관 가운데 경찰과 검찰은 두려워하지 않지만 국세청은 두려워한다고 한다. 지금과 같은 대면행정이 아닌 전산시스템을 이용한 비(非)대면 행정으로 전환해야 한다. 세금 납부 형태를 보면 전체 국세의 96.4%가 자진신고로 들어오고 2.1% 수준이 세무조사를 통해 징수된다. 행정 효율성을 높이고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해 시스템 세정으로 조직개편이 필요하다.

▶원 원장=과거에 비해 국세청이 납세자에 대한 서비스를 강조하고 있지만 여전히 국세행정은 '권력행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국세행정은 '서비스 행정'이고 '조정 행정'이다. 납세자가 납세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도록 도와주는 게 국세청의 일이다. 납세자를 세금을 거둬야 할 객체가 아닌 세금을 납부하는 주체로 보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안 회장=국세행정의 틀을 정보기술(IT)과 접목시켜 바꾸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본다. 국세청의 주요 업무는 납세서비스 제공과 세무조사다. 납세서비스는 대부분 인터넷을 통해 해결이 가능하고 세무조사도 신용카드 사용이 늘면서 세원이 투명화됐기 때문이다.

정리=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