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현대자동차 울산 3공장.휴일인데도 밤새 불이 꺼지지 않았다. 아반떼 i30 등의 수출 주문이 밀리면서 주말 특근이 계속됐기 때문이다. 3공장은 올 들어 평일 주 · 야간 2시간씩의 잔업근무와 주말 특근을 한 번도 쉬지 않았다.

반면 3공장과 붙어있는 2공장은 지난달 26일부터 장기 휴업에 들어갔다. 투싼 등 수요가 급감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위주로 생산하고 있어서다. 이 공장은 오는 9일에야 문을 다시 연다. 2공장 근로자 김모 씨(48)는 "야간조는 2월에 일한 날이 단 8일에 불과했다"며 "가족 보기가 민망해 인근 태화강에서 낚시질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밥그릇을 왜…" 꽉 막힌 물량 조정

글로벌 경기위축이 심화되면서 현대차 각 공장간 물량조정 문제가 최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주문 폭주로 납기를 맞추지 못하는 공장이 있는 반면,잔뜩 쌓인 재고에 일손이 남아돌아 장기 휴업에 나서는 공장도 적지 않아서다. 노조 집행부의 반대로 유연한 생산체제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같은 회사 생산직 근로자들끼리 '일감의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희한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일감이 적은 현장 근로자들은 노조 집행부에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잔업 · 특근을 못하면서 실질 임금이 크게 줄어드는 탓이다. 2공장의 정모씨(35)는 "올 1~2월엔 잔업과 특근을 한 번도 못해 월급이 100만원 이상 줄었다"며 "자녀 학원비 등 돈 들어갈 데가 많은데 월급봉투가 얇아진 탓에 외식은 생각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휴업 중인 5공장 투싼라인의 한모씨(40)는 "노조 집행부는 고용보장 투쟁을 외치기 전에 물량 불균형부터 하루빨리 바로잡아야 한다"며 "넘쳐나는 물량을 내놓지 않으려고 버티는 3공장 노조 대표들도 문제"라고 분개했다.

현대차 현장노조 게시판에는 각 공장 노조의 물량 이기주의를 비난하는 글들이 쉴새없이 올라오고 있다. 아이디 '선량한 조합원'은 "공장 노조가 서로 이기심에 빠져 생산라인이 돌아가지 않으면서 하루하루 불안에 떨고 있다"며 "이런 상황인데도 노조 집행부는 뭘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잘 팔릴 때 한 대라도 더 만들어야…"

공장간 생산물량 조정이 원천 봉쇄된데다 글로벌 판매가 둔화되면서 회사 측은 더욱 다급해졌다. 한 임원은 "해외시장에서 아반떼 등 소형차에 대한 수요가 많은 지금 한 대라도 더 많이 생산해야 한다"며 "판매 시기를 놓칠까 속이 타들어간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작년 말 울산 3공장 외에 2공장에서도 아반떼를 병행 생산할 수 있도록 혼류(混流)설비 공사를 마무리해 놨지만,노사협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차종 이관은 노사공동위원회에서 심의 · 의결한다는 단체협약 조항 때문에 노조 동의가 없을 경우 물량 이동이 불가능하다.

현대차는 작년 충남 아산공장의 쏘나타 물량 일부를 일감이 부족한 울산 1공장으로 옮기기 위해 수백억원을 들여 1공장 내에 혼류생산 설비를 설치했으나 노조 반대로 무산됐었다.

현대차 노사는 지난달 말 강호돈 울산공장장 및 윤해모 금속노조 현대차 지부장을 노사 대표로 한 물량조정 공동위원회를 가동했다. 노사는 이번 주중 물량조정위 실무협의를 재개할 계획이다. 하지만 노조가 물량조정을 주간연속 2교대제와 연계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난항이 예상되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물량조정은 개별 공장 노조간 협의가 전제돼야 하는 등 복합적인 문제가 얽혀있다"며 "주간연속 2교대제를 시행하면 곧바로 풀 수 있는 만큼 이 부분에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회사 측은 최악의 경기침체 속에서 노조가 일은 덜하고 급여는 종전 수준대로 받겠다는 주간연속 2교대제를 들고나올 경우 작년과 같이 물량조정 협의 자체가 진전되지 않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울산=하인식/조재길 기자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