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하고 자주 피로감,식욕 저하,집중력 감퇴,수면 장애를 겪으며 혈압이 올라간다면 만성 신장병을 의심해봐야 한다. 눈 주위가 푸석푸석하고 소변에 거품이 많이 생기고 피부가 가렵고 창백하다면 더욱 만성 신장병일 가능성이 높다.

대한신장학회가 오는 12일 '세계 콩팥의 날'을 맞아 2007년 11월부터 3개월간 전국 7개 대도시에 거주하는 35세 이상 2411명의 일반인과 전국 280개 의료기관에서 혈액 투석과 복막 투석,신장 이식 등 신장 대체요법을 받는 4만4333명의 환자를 비교 분석한 결과 35세 이상 성인의 9.3%가 만성 신장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뇨병 고혈압 동맥경화 고지혈증 비만 등 만성질환이 늘어난 영향이 크다.

당뇨병과 고혈압이 신장병을 유발 또는 악화시킨다는 증거는 명확하다. 만성 신장병은 1~5단계로 분류하는데 5단계에 해당하는 말기 신부전 환자의 44.9%는 당뇨병이 주요 원인이다. 이어 고혈압이 17.2%로 2위,사구체 신염이 11.6%로 3위를 차지한다. 당뇨병에 의해 노폐물을 걸러내는 신장 사구체의 미세혈관이 망가지면 분자량이 큰 단백질이 소변으로 흘러나오는 등 점차 신장 기능이 떨어진다. 이어 신장세포에 염증이 생기고 굳어지는 경향이 나타난다.

고혈압은 방치할 경우 신장 미세혈관의 내벽 압력을 높이고 신장 실질세포를 경화시킨다. 혈압 조절의 대부분은 신장에서 이뤄진다. 염분을 과다 섭취하거나 교감신경이 흥분되면 심장의 혈액 박출량이 높아지고 조직혈관이 수축하면서 고혈압이 유발된다. 신장에는 레닌-안지오텐신-알도스테론 시스템이 존재해 염분(나트륨)과 수분이 체내에 저장될 경우 고혈압이 유발된다. 저염식과 체중 감량,스트레스 관리 등 바른 생활습관과 적절한 약물 치료로 교정하지 않으면 고혈압은 구조화하게 마련이다.

신장학회의 조사 결과 고혈압 환자는 21.3%가 만성 신장병을 갖고 있었다. 특히 고혈압 환자들은 신장 기능이 50% 이상 떨어지고 치료가 쉽지 않은 3기 이상의 중증 만성 신장병의 상대적 위험도가 정상 혈압을 가진 사람에 비해 2.9배가량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또 수축기(최고) 혈압만 놓고 보면 120㎜Hg 미만인 사람들의 8.2%에서 만성 신장병이 나타난 반면 고혈압으로 분류하는 140㎜Hg 이상 사람들에게서는 23.1%가 만성 콩팥병을 앓고 있었다. 이완기(최저) 혈압 역시 70㎜Hg 미만인 사람들의 만성 신장병 빈도는 8.6%에 불과했지만 이완기 혈압 90㎜Hg 이상인 사람들은 23.2%가 신장에 이상이 있었다.

사구체 신염은 어릴 적 감기 폐렴 등의 감염질환을 앓은 후 신장의 해부학적 구조나 면역 반응이 바람직하지 않은 쪽으로 변화할 때 나타나는데 아직도 뚜렷한 원인을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다만 지난해 불거졌던 멜라민 사태처럼 불의의 오염물질이 체내로 들어와 신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학회는 국내 만성 신장병 환자의 고혈압 관련 특징을 7가지로 규정하고 이에 따른 맞춤 치료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첫째 고혈압의 유병률이 높고 증상이 심하다. 일반 성인의 고혈압 유병률은 32.3%인 데 비해 만성 콩팥병 환자의 유병률은 60%로 월등히 높다. 둘째 고혈압과 만성 신장병이 소금 섭취량에 의해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 한국인은 염분 감수성이 외국인에 비해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셋째 혈압이 약물 치료에도 불구하고 원활하게 조절되지 않는 사람이 많다. 심혈관질환 병력이 없고 신장 기능에 문제가 없는 환자는 85.3%가 정상 혈압에 들어간 반면 심혈관질환 병력이 있고 만성 신장병이 1~2단계인 사람은 30.7%만이 목표한 혈압치에 도달하고 있다. 넷째 복용하는 혈압약 수가 많다. 신장 기능이 정상인 고혈압 환자는 63%가 한 가지, 30%가 두 가지,6%가 세 가지를 고혈압 약을 복용하는 반면 신장 기능이 비정상적인 고혈압 환자는 48%가 한 가지,37%가 두 가지,15%가 세 가지 약을 먹는 대조를 보이고 있다. 다섯째 만성 신장병으로 인한 심혈관계 합병증 발생 및 사망률이 일반인보다 높다. 통상 70세 이상에서 일반인은 1% 안팎이 심장 합병증으로 사망하지만 만성 신장병 환자는 10%에 이른다. 여섯째 일반인은 목표 혈압을 140/90㎜Hg 이하로 유지하면 되지만 만성 신장병 환자는 130/80㎜Hg로 더 낮게 내려야 한다. 일곱째 한국인은 신장 기능의 고장에 의한 고혈압의 비중이 외국에 비해 높다.

따라서 신장의 안지오텐신 기능을 저해하는 안지오텐신 전환효소 억제제(ACEI)나 안지오텐신 수용체 차단제(ARB) 계열의 고혈압 약을 쓰는 게 보다 유익할 것이라는 견해다. 이들 약물은 단백뇨 개선 효과와 신장 및 심장 보호 효과가 우수하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


도움말=이태원 경희의료원 신장내과 교수

김영훈 인제대 부산백병원 신장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