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주도로 정부.민간 동참해 외연 확대.."국민 전체의 합의"

미증유의 경제위기 속에서 23일 극적으로 이뤄진 노사민정 합의는 외환위기를 겪던 11년 전의 노사정 대타협과는 주도자와 참여 주체가 다르다는 점에서 일단 돋보인다.

1998년 2월6일 도출된 노사정 대타협은 전 국민의 경제살리기 동참을 이끌어낸다는 취지로 당시 당선인 신분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주도했다.

이에 비해 이번 합의는 노동계의 한 축인 한국노총과 사용자 단체의 하나인 한국경영인총협회의 제안에 정부와 민간 부문이 응한 방식이다.

사회원로로서 대책회의에 참석한 김수곤 경희대 명예교수는 "1차 노사정 합의는 대통령 당선자가 직접 개입해서 성취한 것으로, (노사가) 따라가는 모양새였지만 이번에는 철저히 노사의 자율로 절충점을 찾아내고 발표했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 합의는 또한 노동계의 한 축인 민주노총은 빠진 반면 시민단체와 종교계, 학계, 사회원로 등 `민(民)'이 대폭 참여했다는 점에서도 11년 전과는 차별화된다.

한국노총과 경총은 영세 자영업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실업자, 청년층 등 `노동계 바깥'에 존재하는 취약계층의 목소리를 대변할 주체가 필요하다는 인식에 따라 민간 부문의 참여를 제안했다.

노동조합이 정규직들의 집단 이기주의로 인해 상대적을 더욱 열악한 계층을 대변하지 못하고 내부 부패로 위기를 맞았다는 비판도 있던 터였다.

이번 합의문에 "정부는 경제위기로 특히 고통을 받는 취약계층ㆍ실업자 등의 보호를 위해 사회안전망을 적극 확충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수 있었던 것은 실제 민간의 목소리가 반영된 결과에 해당된다.

구체적으로 ▲실업급여 지급확대 ▲영세자영업자 보호 ▲고용보험 재정확보 ▲비정규직의 사회보험 가입률 제고 ▲노후소득보장체계 강화 ▲빈곤탈출 지원 ▲위기가구 긴급복지 지원 확대 ▲저소득층 아동지원 ▲공공의료 체계 확충 등의 결실을 봤다.

김대모 노사정 위원장은 "폭넓은 참여가 이번 합의의 핵심"이라며 "11년 전과 달리 노사정뿐만 아니라 시민단체와 종교계, 법조계, 언론계, 학계가 참여한 것은 국민 전체 합의라고 봐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1998년의 노사정 공동선언이 고용조정 법제화(정리해고), 근로자파견제 도입, 전교조 합법화, 노조의 정치활동 허용 등 굵직한 쟁점현안을 다룬 `대타협'이었다면 이번 노사민정 합의는 쟁점현안을 제쳐놓은 `소타협'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사실 이번에는 비정규직 근로자의 고용기간 연장, 지역ㆍ연령별 최저임금 차등화, 임금ㆍ근로시간 유연화를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 등 타협이 쉽지 않은 현안들이 처음부터 논의 대상에서 제외됐다.

11년 전 노사정 공동선언에 참여했다가 내부 반발로 `지도부 총사퇴'의 후폭풍을 겪었던 민주노총과 진보성향 시민사회 단체들이 이번 대화에 불참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노사정 대타협에는 고용보험, 산재보험, 국민연금, 의료보험 등 4대 사회보험 제도의 적용이 크게 확대되는 등 제도 혁신이 뚜렷했지만 이번에는 기존 제도를 추경예산 반영으로 보강한다는 수준에 그쳤다.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jangj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