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4월에 이미 150명 변호사가 들어갈 방을 마련해 두었습니다. "

김동건 대표가 6층 안내를 자청했다. 현재 입주해 있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 메디슨 건물 4,5층에 이어 작년에 한 층을 더 빌렸는데 1주일 전에 깔끔하게 단장을 마무리했다. 6층에는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방이 50여개나 되지만 2년 뒤에는 소속 변호사들로 북적일 것이라는 설명이다.

1998년 5명 변호사로 출발한 법무법인(로펌) 바른이 10년 만에 국내 변호사만 90명 가까운 대형 로펌 반열에 올라섰다. 특히 정동기 청와대 민정수석과 강훈 전 법무비서관(대표), 나경원 권영세 의원 등 현 정부 실세들이 몸담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눈치 빠른 공기업들이 사건을 싸들고 간다"는 미확인 소문들이 자자하다. 바른 측은 부담스럽다며 손사래를 치지만 로펌업계에선 시샘과 부러움이 교차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경기침체로 대형 소형 할 것 없이 모두들 죽겠다고 비명인 판에 '공격 앞으로'를 외치는 바른의 진짜 경쟁력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지난 19일 방문한 김 대표 사무실은 '서류창고'를 방불케 했다. 손님이 손을 둘 곳이 없을 정도로 접객용 테이블은 온통 서류뭉치들 차지였다. 판결문,준비서면,항소 및 상고이유서가 몇 겹으로 쌓여 있고, 법원의 최근 인사이동 자료도 한쪽을 지키고 있었다. "의뢰인들이 사건 진행상황을 문의할 때에 대비해 이렇게 해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게 이유였다. 대표라고 해서 로펌에 들어온 사건에 대해 뒷짐지고 있을 수 없는 데다 박수근 그림 위작사건 등 직접 챙기는 사건들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변호사는 결국 엉덩이 품값이거든요. " 의뢰인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선 그만큼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는 말이다. 김 대표는 파트너로 있는 박인호 변호사를 예로 들었다. 그는 1년 365일 중 360일을 일한다. 토요일이나 일요일 밤이면 그의 퇴근을 기다리는 부인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사법연수원 3기에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출신으로 로펌 내 서열이 10위권 이내지만 어소시엣 변호사에게 맡기지 않고 대부분 손수 서류작업을 하기 때문에 쉴 틈이 없다는 것.

바른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파트너들이 어소시엣보다 많은 역피라미드 구조였다. 대개 로펌의 파트너 대 어소시엣의 비율이 1 대 4 정도인 데 비해 바른은 현재 파트너 이상 40명,어소시엣 48명으로 1 대 1.2의 비율. 1 대 1.5가 내부적으로 그어 놓은 마지노선이다. 배석판사가 있지만 재판장이 직접 판결문을 작성하는 법원시스템을 벤치마킹한 결과다.

저비용-고효율 조직구조에 '품질'로 승부를 거는 일처리를 하다 보니 변호사 인당 매출과 수익률은 껑충 뛸 수밖에 없다. 강훈 대표는 "다른 로펌 100명 변호사가 이루는 매출을 우리는 60~70명이 달성하는 셈"이라고 자랑했다.

로펌도 결국 '사람장사'인 만큼 실력 있고 배경 좋은 판 · 검사 영입이 흥망성쇠의 최대 관건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바른은 '인맥관리'를 위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법원행정처 인사관리실장 출신인 강병섭 석호철 변호사가 포진해 있어 '법원행정처 인사실을 옮겨놓았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그 중심에 '마당발'로 통하는 김 대표가 있다. 법원의 살림살이를 책임지는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 출신인 그는 서울지방 · 고등법원장 등을 지낸 화려한 이력에다 미술계 불교계 등 다양한 방면에 걸친 폭넓은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법조계 인사시즌마다 '대어'들을 영입해가는 것으로 유명하다.

올해만 해도 다른 로펌이 영입 직전에 있던 법원 행정처 출신의 조 모 부장판사를 공을 들여 스카우트해 갔다는 후문이다. 여기에 촛불집회 관련 광화문 상인의 집단소송 등 친정부 측 대리사건과 도곡동 땅 차명 의혹 사건을 비롯한 MB사건을 도맡아 처리하는 등 플러스 알파까지 덧칠해지면서 일약 스타로펌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것이다.

강 대표는 "아직 김앤장 등에 견줄 만큼 분야별로 전문성을 두루 갖춰놓고 있지는 못하다"면서도 "정부에 정책방향도 제시하고 입법관련 컨설팅도 하는 등 로펌이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는 무한대"라고 의욕을 내비쳤다.

글=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

사진=양윤모 기자 yoonm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