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고양시에 사는 김모씨(80 · 남)는 최근 서울중앙지법을 찾았다. 10년 전 아들과 거래 관계에 있던 사람에게 빌려줬다가 받지 못한 1000만원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내기 위해서다. 거무튀튀한 때가 묻은 점퍼를 입은 그는 "그동안 빌려준 사실을 잊고 지냈지만 요즘 형편도 좋지 않고 언제 죽을지 몰라 소송을 내게 됐다"며 "돈 빌려간 사람은 으리으리한 집에 살면서도 나 같은 서민한테 꿔간 돈을 나 몰라라 한다"고 분개했다.

경기 불황 여파로 소액민사소송이 늘고 있다. 22일 서울중앙지법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접수된 일반 소액민사소송은 4329건에 달했다. 이는 전달의 3226건에 비해 34.2%(1103건)나 증가한 수준이다.

소액민사소송은 소송가액이 2000만원 이하인 소송을 말한다. 소액소송이 급증하고 있는 것은 오래 전에 빌려준 뒤 잊고 지내다가 최근 경기가 좋지 않자 적은 돈이라도 되돌려 받겠다며 소송에 나서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경기 불황으로 인해 아무리 적은 돈이라도 반드시 받아내겠다는 사람이 그만큼 늘고 있다는 의미다.

대형 카드사에서 일했던 유모씨(45 · 남)도 최근 소액소송 대열에 합류했다. 만기가 지난 콘도회원권의 보증금을 돌려받기 위해서다. 유씨가 가진 S콘도 회원권의 보증금은 239만원.콘도 회사는 돈이 없다는 핑계로 보증금 반환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월 30만원짜리 월세방에 살고 있는 유씨는 와병 중인 노모의 약값에 보태기 위해 소액소송을 선택했다. 유씨는 "어머니 약값이 모자라 고민하던 끝에 묵혀뒀던 회원권이 생각났다"며 "큰 돈은 아니지만 당장 어머니 약값이 없는 상황이라 절박하다"고 토로했다.

한 주류납품업체 대표 이모씨는 밀린 납품대금을 받아내기 위해 민사소액과를 찾았다. 그가 받으려는 돈은 200만원.3년 전에 납품한 술값을 아직 주지 않고 있는 한 주점이 피고다. 그는 "웬만하면 말로 해결하고 싶었는데 내 코가 석자라 법정까지 오게 됐다"고 털어놨다. 소액사건을 담당하는 한 판사는 "예전 같았으면 못 받는 셈 치고 잊어버렸을 정도의 돈도 끝까지 받아내겠다며 소송을 내는 사람들이 늘었다"며 "그동안 야박하다는 얘기를 듣기 싫어 빚 독촉을 하지 않고 지내다가 당장 살기가 어려워지자 소송을 내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박민제/강유현/김평정 기자 pmj5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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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액민사소송=소가가 2000만원 이하인 소송 사건.빌려준 돈이나 물품 대금 등을 받지 못해 제기하는 소송이 대부분이다. 변호사를 살 여력이 없는 사람들이 많아 원고나 피고 모두 변호사 없이 직접 소송을 벌이는게 일반적이다. 1심 판결때까지 평균 100일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항소율은 0.6%로 매우 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