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하는 마음으로 미술이 생활에 녹아들게 할 것"

"어차피 봉사하겠다는 마음으로 임하는 것인데 보수나 그런 것은 별로 신경쓰지 않습니다"
배순훈(66) 신임 국립현대미술관장은 21일 연합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공모절차에 응한 이유와 향후 계획 등을 설명하면서 이처럼 말했다.

대우전자 회장, 정보통신부 장관,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KAIST) 부총장 등을 지낸 그의 관장 응모와 임명은 그야말로 파격이다.

"나이가 들면서 우리 국민의 저력을 봐온 노인으로서 마지막 봉사를 하겠다는 생각이에요.

그래서 금융과 예술 분야를 고려했는데 장기적으로 미래 세대에 봉사하기 위해 예술 분야로 정했고 음악은 그나마 기업들이 비교적 많이 지원하지만 미술은 아직 그런 발전이 없는 것 같아서 응모했지요"
그의 관장 취임은 개인적으로 손해를 보는 장사이기도 하다.

카이스트에서 몇명 되지 않는 특훈교수(정년이 무기한인 교수직) 지위를 작년 8월 부여받았지만 이번 관장 취임을 계기로 후배들에게 물려주게 된다고 한다.

사실 그는 미술과는 떼려야 뗄수 없는 인연을 쌓아왔다.

중고교생 때부터 그림을 잘 그린다는 칭찬을 받았고 서울대 공대 재학시절에도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 미대생과 자주 어울렸다고 한다.

그러다가 현재의 아내인 화가 신수희(65)씨와 결혼했고 그런 피를 이어받아 아들인 작가 정완(35)씨는 건축가 겸 설치미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딸 희영(32)씨도 예술이론으로 박사학위까지 밟다가 현재는 진로를 바꿔 뉴욕에서 변호사 생활을 하고 있다.

다음은 일문 일답.
--미술관장에 응모하게 된 이유는.
▲순수한 뜻이다.

나이가 들면서 뭔가 사회에 기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져왔다.

작년 말 출간한 책에는 이런 생각들이 담겨있다.

(그가 언급한 책은 '우리에겐 위기극복의 유전자가 있습니다'라는 책으로 경제 위기 때 선량한 사람들이 덜 피해를 보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주장이 들어있다.

)
--다른 분야도 많은데 굳이 미술을 택한 것은.
▲금융 분야도 생각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미래 세대에 봉사하기 위해 예술 분야에 기여하는게 어떨까 생각했다.

그래서 음악과 미술을 고려했다.

그 중 미술은 아는 사람들도 많다.

또 음악은 기업들이 메세나 활동 등 상대적으로 많이 지원하지만 미술은 아직도 그런 발전이 없는 것 같아 지원하게 됐다.

--특훈 교수를 포기한다던데 어떤 자리인가.

▲작년 8월말 특훈교수 지위를 부여받았다.

카이스트 안에서 5명 정도 있는데 정년이 없는 교수다.

이번에 떠나면 지위는 없어진다.

이를 포기하는 데 아쉬운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봉사할 기회가 생겼고 젊은 교수들한테 기회도 제공하게 된다.

김수환 추기경 장례식 때 길게 늘어선 조문 행렬을 보면서 봉사하는 마음을 더욱 굳혔다.

봉사하라는 사명이 부여된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미술관장으로서 어떤 구상을 갖고 있나.

▲이런 저런 경험 때문에 문화를 업그레이드하면서 세계적인 산업화도 도모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과거 경제계에 있을 때 인연으로 광산지역인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 건설을 구상 단계부터 지켜봤다.

미술관 건축 자재로 쓰인 특수강은 원래 이곳에서 만들어지던 것이다.

미술관 건설로 특수강 산업도 활기를 찾았다.

창원 마티즈 공장 외부에도 그 특수강을 사용했다.

시시각각 색이 변하면서 묘한 분위기를 낸다.

--그런 구상이라면 차라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맡는게 낫지 않나.

▲문화부 장관은 너무나 넓은 영역을 소화해야 한다.

관광이나 체육만 해도 분야가 넓다.

제가 말한 것은 장관이 할수 없는 일이다.

국립미술관장의 역할이 있다.

--그래도 미술관장은 힘이 없는 자리다.

▲장관의 협조를 얻어 서로 힘을 합쳐 일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미술을 좋아하는 감식안을 갖췄더라도 미술관의 역할인 전시를 기획하는 일은 완전히 다른 영역인데.
▲미술관에는 그런 전문적인 업무를 하는 분들이 많다.

관장은 그런 전문가들이 일을 잘할 수 있게 조직을 잘 운영하면 된다.

--정보통신부 장관 시절 이뤄놓은 업적을 꼽는다면.
▲재임 기간이 길지는 않았지만 초고속통신망 확산과 우체국 혁신을 꼽을 수 있다.

무엇보다 택배나 홈쇼핑 등 신규 사업의 경쟁력 기반을 닦아 우체국 혁신을 추진하면서 당시 3만5천명의 집배원을 해고하지 않은 일이 지금 되돌아봐도 뜻깊게 생각된다.

현재도 당시 집배원 분들이 고마워 하는 마음을 편지로 보내준다.

--좋아하는 미술품들은.
▲인상파 그림에 많은 매력을 느낀다.

국내 화가 중에서는 박서보 선생의 그림도 좋아한다.

--마지막으로 소감을 말한다면.
▲저 같은 노인들은 월드컵 때의 붉은 악마 등 우리 국민이 이뤄낸 기적을 많이 봐왔다.

경제 발전을 논할 때 많은 사람들이 박정희 대통령이나 정주영 회장만 말하는데 실제로는 그 밑의 수백만 근로자가 잘 해준 것이다.

국민들이 미술을 즐기고 미술이 생활속에 녹아드는 선진국을 이루는데 기여하고 싶다.

(서울연합뉴스) 경수현 기자 ev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