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흘간 총 38만5천여명 빈소 찾아

평생 사랑과 화합을 외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다 87세를 일기로 선종한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의 빈소가 마련된 명동성당에는 19일에도 정.재계 인사의 방문이 하루 종일 이어졌다.

박관용 전(前) 국회의장은 오전 9시40분께 성당을 찾아 "인자하신 지도자가 떠나 참으로 안타깝다.

그분의 뜻이 우리나라에 널리 퍼졌으면 한다"며 "의장직을 그만두고 뵈었을 때 `국민 뜻을 헤아리고 더불어하는 정치를 해달라'고 당부하셨던 말씀이 떠오른다"고 애통해했다.

오후 2시50분께 빈소를 찾은 박태준 전 총리는 "아쉬울뿐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2년 전 가톨릭대 종교반에서 마지막으로 만났다.

그때 한 10년은 더 사셔야 한다고 말씀드렸다"며 "1995년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찾아오셔서 나라 걱정, 국민 걱정을 하셨던 것이 기억난다"고 슬퍼했다.

김정례 한국여성정치연맹 명예총재도 "복잡하고 어지러운 세상에 큰 어른이 돌아가셨다.

큰 별이 땅에 떨어져서 허전하고 외롭고 아쉽기 한이 없다"고 했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도 조문을 와 "추기경님은 저에게 은혜와 감동, 영감을 주신 분이다.

마지막 모습까지 제 인생에 영향을 미쳤다"고 안타까워했다.

앞서 이한동, 이수성 전 총리도 빈소를 방문해 김 추기경이 남긴 뜻을 기리고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김 추기경 선종 직후 빈소를 찾았던 한승수 국무총리는 이날 오후 10시 35분께 부인 홍소자 여사와 다시 성당을 방문해 조문을 올렸다.

한 총리는 "정말로 귀한 분을 잃었다.

남겨주신 뜻대로 한다면 모두가 행복하고 생애 의의를 느낄 것"이라면서 "개인적으로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아서 실은 매일 저녁 성당을 찾아왔다"며 애달픈 마음을 털어놨다.

손숙 전 환경부장관은 연극 `신의 아그네스'에서 수녀 아그네스 역을 맡았던 배우 윤석화씨, 이해인 수녀의 연출로 명동성당에서 피아노 연주회를 열었던 노영심씨 등과 함께 18일에 이어 다시 빈소를 찾았다.

오스발도 파딜랴 주한 교황청 대사는 오전 9시30분께 성당을 찾아 "김 추기경께서 돌아가신 것은 사제로서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 큰 손실이다.

작년 2월 필리핀에서 뵌 적이 있다.

그분 앞에 서면 항상 겸손해지곤 했다.

그를 위해 기도하겠다"며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해인사에서 올라왔다는 원택 스님은 "스테파노 추기경님을 잃은 깊은 슬픔에 위로의 말을 드린다"며 "살아계실 때 많은 일을 하셨기에 애도의 물결이 끊이질 않는다.

정신적 지도자였던 추기경님께서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굽어살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신헌철 SK에너지 부회장이 SK그룹 사장단 10명과 함께 빈소를 찾아 "항상 사랑을 강조하시던 추기경님의 말씀이 SK의 `행복경영'에 가르침을 주셨다"며 "어려울 때 우리를 하나가 될 수 있게 해주시던 큰 어른을 가졌다는 게 큰 행복이었다"고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도 조문을 와 "가끔 만나면 빨리 세례를 받으라고 하셨다.

항상 웃으시던 기억이 남는다.

그분의 생활신조는 정말 존경할 만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팝페라 가수 임형주씨와 탤런트 양미경씨 등 문화.연예계 인사들도 김 추기경의 가는 길을 보기 위해 기꺼이 명동성당을 찾았다.

임씨는 "대통령 취임식 때 아베마리아를 부르고 나서 추기경님을 처음 만나뵈었고, 길상사 종교화합음악회에서도 법정스님과 함께 뵌 적이 있다.

더 자주 뵈었어야 했는데 슬프기 그지없다"며 "선종하시던 날 희망을 노래하는 새 앨범이 나왔는데 이를 추기경님께 바친다"며 슬퍼했다.

가톨릭 신자를 비롯한 시민들도 온 종일 명동성당 앞에 길게 줄을 늘어서서 영원한 평안과 안식에 접어든 김 추기경의 조문을 밤늦게까지 애타게 기다렸다.

이날 밤 성당 앞에서 조문을 준비하던 홍성후(60)ㆍ김옥녀(56)씨 부부는 "이미 성당에서 추모미사를 드렸지만 이 곳에서 연도와 조문을 하기 위해 늦은 시간에 다시 왔다"면서 "자정이 다 돼가면서 그나마 대기줄이 짧아져서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최순심(59.여)씨도 "추기경의 얼굴을 볼 수 없지만 예를 올리기 위해 왔다.

그간 감기때문에 오지 못해 아픈 몸을 끌고 늦게 나마 왔다"며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어주셔서 감사드린다.

저 세상에서 평온하시길 바란다"고 애도했다.

자정 가까이 돼 뒤늦게 성당에 도착한 시민들은 서둘러 빈소를 찾아 조문을 올렸으며, 천주교 장례위원회는 이날 자정을 기해 조문을 공식 마감했다.

장례위원회는 김 추기경 선종 이후 조문이 시작된 16일 오후 10시부터 19일 오후 11시까지 모두 38만5천20여명이 빈소를 찾은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박성민 기자 eddi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