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광장의 출현 이후 일찍이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생겨난 오해와 착시를 활용한 여론조작과 다수 위장은 집단지성이란 허구를 만들어냈고,감각으로 수용한 정보의 파편들을 지성으로 착각한 사팔뜨기 지식인들은 마침내 대의민주정의 폐지까지 공공연히 외치는 지경에 이르렀다. "

소설가 이문열 한국외대 석좌교수(61)는 19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주최 관훈포럼에서 '지친 대의민주정과 불복의 구조화'라는 제목의 강연을 통해 "현 정권이 들어서고 난 후 대의민주제와 다수결에 대한 불복이 상시적인 구조로 자리잡았다"며 "우리 대의민주정은 지쳐 있고,그 어느 때보다 거센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했다. 또한 "오랫동안 은밀하게 대의민주정의 지반을 침식해온 직접 참여의 유혹과 대의제 다수결에 대한 의심은 이제 불복의 구조화로 자리잡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사회 시위 문화가 건국 초기부터 제5공화국까지 점차 활성화돼 이제는 일상적이 된 점과 때맞춰 인터넷 광장이 출현한 게 직접 참여의 욕구를 키웠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일상화된 시위문화가 대한민국과 그 존재 근거인 헌법 자체를 흔들고 있다는 판단이다. '다수결원리'와 '대의정치'라는 초 · 중등 교과서에 나오는 가장 기본적인 민주주의 원칙이 다수를 가장한 '인터넷 군중'에 의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지난해 봄 촛불시위 군중은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다수가 아니라 대선 불복세력이 그 사안을 계기로 한 곳에 모여 다수를 조작한 것일 뿐"이라며 "즉 집단지성이 아니라 집단불복의 다수"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지난 권위주의 정권 때부터 키워온 불복의 유혹이 현 정권에서 상시적 구조로 자리잡았다며 "오랜 불복의 경력을 가진 '그때 그 사람들'과 지난 10년 동안 새 기득권층으로서의 단맛을 즐긴 사람들,그리고 지난 정권이 정성을 들여 기른 일부 시민단체가 카르텔을 형성하고,의회를 뛰쳐나온 야당의원들이 그 앞장을 섬으로써 이제 불복은 정교하고도 견고한 구조로 우리 사회에 자리잡게 됐다"고 표현했다.

그는 이어 "역사적 경험에 비춰볼 때 불복의 구조화로 지친 대의민주정은 종종 비극적 결말로 끝났다"며 국민통합의 회복,불복세력의 자제,정권의 결단 등을 해소 방안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현 정부에 중간점수를 매겨달라는 질문에 "점수 준다는 것은 고약한 노릇이고 다만 심정적으로 '불만스럽다''성에 차지 않는다' 정도"라며 "비판적인 의견을 말한다면 소심과 우유부단 쪽을 비판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10년 사이 진보세력이 장악한 '문화 권력'에 변화가 있을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 이씨는 "1980년대 후반만 해도 엄연히 '보수 문인' 세력이 있었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어쩌면 나 이외에는 아무도 없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가 됐다"고 설명했다. 문단에서 보수세력은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에 아무 기여도 못하는 집단이 됐다는 것.

그는 "하지만 지난 10년간 내가 정권에 의해 불이익을 받은 것도 없다"며 "지난 10년의 정권이 최소한의 도덕성과 문화주의는 견지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