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방식 섭취나 운동부족 등 잘못된 생활습관에 의해 복부비만(내장비만) 당뇨병 고혈압 고지혈증 고인슐린혈증 동맥경화 등이 서로 얽히고 설켜 발병하며 이를 방치할 경우 결국 뇌심혈관질환이나 당뇨합병증으로 사망하게 된다는 게 '대사증후군'의 핵심 개념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주치의를 지냈고 최근 의학계 후배들과 '대사증후군(2판)'을 출판한 서울 노고산동 허내과의원의 허갑범 박사로부터 대사증후군의 현황과 대책에 대해 들어본다.

◆40대 이상 26%가 대사증후군

2001년부터 도시(안산 5020명) 및 농촌(안성 5024명)에 거주하는 40대 이상 주민을 대상으로 이뤄진 대규모 역학조사에 따르면 총 26.1%가 대사증후군에 해당한다. 2형 당뇨병 환자 또는 고혈압 환자의 50%가량이 대사증후군에 속한다. '인슐린 저항성'이 생길 경우엔 무려 72%가 대사증후군이 된다는 게 통계적 연구결과다.

몸에 이로운 고밀도지단백(HDL)결합 콜레스테롤이 정상치보다 낮고 혈중 중성지방이 정상치보다 높으면 대사증후군을 유발한다. 그렇지만 최근에는 이런 이상지혈증이 대사증후군보다는 동맥경화와의 연관성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허 박사는 몸에 해로운 저밀도지단백(LDL)결합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은 것은 '낮은 HDL'이나 '높은 중성지방'에 비해 동맥경화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고 알려져 있지만 최근에는 전체 LDL 중에서 상대적으로 입자가 작고 밀도가 큰(small dense) LDL이 39%이상을 차지하면 동맥경화 위험이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고 소개했다.

◆복부비만이 첫 단초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식으로 대사증후군의 발단은 찾기 어렵다. 그러나 첫단추는 대개 복부비만부터 꿴다. 30대 이후 조금만 체중이 늘어도 십중팔구는 내장비만,지방간,근육내지방축적인 경우가 많다.

복강에 지방이 과잉 축적되면 간문맥(위나 장에서 간으로 영양분을 공급하는 혈관)을 통해 지방산이 많이 유입되고 간이나 근육에서 인슐린의 포도당 이용률이 떨어진다. 즉 인슐린은 에너지원인 포도당을 세포안으로 운반하는 역할을 하는데 혈중에 지방산이 증가하면 세포가 포도당 대신 지방산을 받아들이게 돼 '인슐린 저항성'이 생긴다. 인슐린이 제대로 분비돼도 제 역할을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이에 따라 혈중 포도당이 높아지면 췌장의 베타(β)세포가 자극을 받아 인슐린분비가 촉진되고 인슐린이 적정치보다 높은 '고인슐린혈증'이 된다.

혈중 인슐린 농도가 높아지면 체내에 염분과 수분이 과잉 축적되고 교감신경이 자극받아 심장박동이 증가하고 혈관이 수축돼 고혈압이 발생한다. 또 혈중 중성지방 농도는 증가하는 반면 HDL-콜레스테롤은 내려가 고지혈증이 유발된다. 이렇게 되면 혈액은 끈끈해지고 혈관이 좁아진 상태에서 압력까지 높아져 죽상 동맥경화가 온다. 동맥경화가 심장관상동맥에서 이뤄지면 협심증과 심근경색증을,뇌동맥에서 진행되면 뇌졸중을 초래하게 된다.

◆인슐린 저항성과 맞춤치료

복부비만인 사람도 일부는 대사증후군의 핵심원인인 인슐린 저항성을 보이지 않으며 반대로 저체중이거나 정상체중인 사람도 인슐린 저항성을 보인다. 특히 한국인은 정상 이하 체중이면서 인슐린 저항성과 당뇨병을 동시에 보이는 사람의 비중이 높다.

당뇨병은 췌장에 문제가 있어 인슐린이 제대로 분비되지 않는 1형 당뇨병(소아형)과 복부비만 때문에 인슐린이 분비돼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2형 당뇨병(성인형)으로 나뉜다. 서양인은 1형이 약10%, 2형이 약90%로 분류되는데 비해 한국인은 1형 12%, 2형 85%,나머지는 1형도 2형도 아닌 중간형(1.5형)이라는 게 허 박사의 견해다. 또 2형 당뇨병의 경우 서양인들은 대부분 전신적인 비만을 가지고 있지만 한국은 30~40%에 그치고 나머지 60~70%는 마르거나 정상체형이면서 배만 불뚝 나온 복부비만이며 심지어 약 10%는 저체중을 보인다는 것이다.

정상 이하 체중의 인슐린저항성과 당뇨병은 △어린 시절을 영양결핍 상태로 지내다 성인 이후 영양과잉으로 변해 췌장이 지친 것 △동양인의 타고난 인슐린 분비능력이 부족한 것 △미토콘드리아 DNA의 손상으로 인한 췌장베타세포의 기능부전 등으로 설명되고 있으나 연구할 과제가 많다.

허 박사는 "최근 당뇨병 초기단계부터 인슐린을 공격적으로 투여하자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고 있으나 획일적인 투여는 고인슐린혈증(비만 심장병 뇌졸중 유발) 등의 부작용을 초래하거나 인체의 자생적인 치유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며 "인슐린 저항성의 유무,인슐린 분비능력 정도에 따라 당뇨병 유형을 6가지로 나누고 이에 따른 맞춤치료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