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스위스 다보스포럼 기간 중 열린 '한국의 밤' 행사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친필 서명이 참석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행사장에 마련된 참석자 방명록에 적혀 있던 최 회장의 사인 끝에 '22'란 숫자가 조그맣게 붙어 있었던 것.칼리드 알팔리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 회장 등 행사장에 모인 해외 인사들은 최 회장에게 22의 의미를 물었고,곧이어 돌아온 최 회장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최 회장은 유독 '22'란 숫자를 좋아한다. 그는 공식서류에 들어가는 자신의 모든 서명 뒤에 반드시 22를 함께 써 넣는다. 대한핸드볼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그의 핸드볼 유니폼에도 22번의 등번호가 달려 있을 정도다. 최 회장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숫자 22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숫자 22의 비밀은 그의 경영철학에서 찾을 수 있다. 22는 최 회장이 추구하는 '행복경영'을 상징한다는 것이 SK그룹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행복을 한자로 쓰면 '幸福'이다. 비밀의 열쇠는 '幸福'의 획수에 있다. 이 한자의 모든 획수를 더하면 22가 된다.

행복경영은 최 회장이 늘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다. 그는 소버린과의 경영권 분쟁 등 외풍을 겪은 직후인 2004년 10월 제주도에서 열린 CEO세미나에서 이른바 '뉴 SK로의 변신'을 선언했다. 최 회장은 이 자리에서 "사회가 행복해야 기업도 행복해지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SK그룹의 기본 경영이념을 '이윤 극대화'에서 '행복 극대화'로 바꿔버렸다.

최 회장의 서명에 22가 따라붙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때부터다. 행복이란 경영철학을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숫자에서 찾은 것이다. 22는 행복이란 뜻 이외에도 SK 계열사 간 특유의 '따로 또 같이'라는 경영방식도 함축하고 있다. 계열사별로 이사회 중심경영을 통해 '따로' 성장하고,브랜드와 기업문화를 공유해 '또 같이' 시너지를 내는 것을 의미한다.

권오용 SK그룹 브랜드관리실장은 "회사 임직원들 사이에 22는 이제 단순한 숫자를 넘어 행복과 시너지를 의미하는 상징 코드로 자리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