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 경찰과 그보다 더한 `허당' 범인들

문자 그대로 `난형난제(難兄難弟)'였다.

경찰 작전이 허술했다면 범인들의 두뇌도 결코 경찰을 능가하지 못했다.

제과점 여주인 납치사건의 범인 한명이 잡히면서 납치극의 윤곽이 드러났다.

범인들은 `한탕'을 위해 예행연습까지 하며 나름 치밀한 준비를 했지만 범행 차량에 자신들의 차 번호판을 달았는가 하면 위조지폐에 꼴좋게 속아넘어갔다.

경찰 역시 피해자의 안전대책을 전혀 수립하지 않은 상태에서 위조지폐를 넘겨줬다가 결국 눈앞에서 범인을 놓치면서 `닭쫓던 개' 신세로 전락하기도 했다.

◇범인들 "저 잡아 가세요" = 교도소 동기인 범인 심씨와 정모(32.수배중) 씨는 납치를 모의한 뒤 체어맨을 훔치고 오토바이도 한대 빌렸다.

납치할 때에는 고급 승용차인 체어맨을 이용해 의심을 피하고 돈을 받을 때에는 기동성이 좋은 오토바이로 경찰 추격을 따돌리자는 심산이었다.

`범행 도구'를 마련한 이들은 지난 10일 양천구 신정교 남단과 노들길 성수대교 일대에서 오토바이가 전방을 탐색하면 체어맨이 따라가는 식으로 예행연습까지 했다.

범인들은 여기까지 거의 완벽한 줄 알았지만 사실은 결정적 실수가 있었다.

훔친 체어맨이 도난차량으로 인식되지 않도록 번호판을 바꾸면서 하필이면 심 씨 소유 프라이드 번호판을 떼어내 달았던 것.
경찰은 이들의 이동 경로에 설치된 CC(폐쇄회로)TV를 분석한 끝에 체어맨에 달린 프라이드 번호판을 포착하고 주인 심씨를 용의자로 지목했다.

결국 이들은 자신들이 범인이란 사실을 만천하에 공개하고 다닌 셈.
이들은 또 돈 가방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돈을 비닐봉지에 담은 뒤 다시 가방에 넣어라'고 요구했고, 경찰의 추격을 피해 달아나다 봉지만 꺼내고 가방은 엉뚱한 곳에 버리는 등 머리를 썼다.

자신들이 받은 돈이 가짜라는 사실은 상상도 못한 채 약속대로 피해자를 풀어준 뒤에는 돈을 나누려고 한 모텔에 몸을 숨겼다.

7천만원 중 1천만원 씩은 나눠갖고 5천만원으로는 같이 사업을 해보자며 꿈에 부푼 이들은 돈을 나누기 전 자축의 의미로 샤워도 하고 맥주도 한 잔씩 했지만 돈 봉투를 열어보고는 경악했다.

애써 빼앗아온 돈이 컬러 프린트로 인쇄돼 너무나 쉽게 위폐로 식별됐던 것.
도주를 하면서도 돈가방을 버리는 용의주도함은 보였지만 정작 비닐봉지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확인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들은 위폐를 잘못 사용했다가는 바로 덜미를 잡힐 수 있다고 보고 태워 없애기로 했다고 한다.

심씨는 경찰에서 "설마 CCTV가 차의 번호판까지 식별해 낼 줄은 몰랐다"며 뒤늦게 후회했다.

◇경찰 `단지 놓쳤을 뿐이고..' = 피해자가 무사히 풀려났고 범인도 한명 잡았지만 사실 경찰 수사도 허점 투성이였다.

지난 11일 오후 2시께 위폐가 든 골프보조가방이 오토바이를 탄 용의자에게 전달되자 일반인으로 위장한 경찰관들은 곧바로 오토바이 4대와 영업용 택시 2대, 승용차 6대에 나눠 타고 추격을 시작했다.

신호대기 중에 용의자와 나란히 서는 순간도 몇차례 있었지만 끝까지 검거를 자제한 채 추격을 계속했다.

그러나 목동의 한 도로변에서 용의자가 교통체증을 틈타 신호를 무시한 채 내리막길을 내달려 골목길로 사라진 이후 도로에 갇힌 경찰은 추격을 포기했다.

다행히 피해자는 2시간 뒤 경기도 광명의 한 도로변에 내려지면서 무사히 돌아왔지만 경찰은 이번 작전에서 전혀 프로답지 못한 실수를 여럿 범했다.

우선 경찰은 오토바이를 탄 용의자가 경찰의 추격을 알게된다면 공범이 다른 곳에서 데리고 있던 피해자에게 위해를 가할 수도 있다는 부분에 대한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또 위폐를 전달한 뒤 범인을 추격하겠다는 결정을 하면서 추격에 실패할 경우 발생할 불상사에 대해서도 미리 생각하지 못했다.

경찰 추격을 따돌리는 데 성공한 범인들이 위폐라는 사실을 알아챘다면 피랍자가 무사히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었는데 이 부분에 대한 인식이 없었던 것이다.

아울러 경찰은 7천만원 규모의 위폐가 유통될 경우 초래될 사회적인 혼란에 대한 대비책도 세우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위폐는 달아난 공범이 체어맨에 싣고 달아났지만 돈이 실제로 태워졌는지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서울연합뉴스) 윤종석 기자 bana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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