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문명의 발달사에 있어서 문자는 핵심이다.

인류가 농업을 처음으로 시작한 기원전 1만년께 소위 신석기시대가 시작되면서 처음으로 사냥과 채집경제에서 농업경제로 대변환이 일어난다.

인간들은 싫든 좋든 모여 살아야 했고 봄에 심은 곡식을 재배하고 추수하기 위해 한곳에 정착했다.

이때 가장 먼저 등장한 문자 체계는 상거래에 활용된 소위 '물표'라는 것이다.

'물표'는 그 물건과는 상관없이,자기 나름대로 물건을 표시하는 기호를 조그만 진흙덩이에 표시한 것이다. 예를 들어 십자 모양을 표시하여 서로 간에 '양'이라고 약속하는 체계다.

본격적인 문자가 등장한 것은 기원전 3300년쯤으로 이라크 지역 남부 우룩(성서의 에렉,현재 와르까)에서 처음 발견된다.

기원전 4000년께부터 마을 형태에서 도시 형태로 바뀌면서 제정일치의 통치자,귀족,소작농,노예로 이뤄진 계급사회가 등장했다.

도시라는 조직의 근간은 '소통'이며 이때 처음으로 '그림글자'가 등장했다.

예를 들어 '사람'을 표현하는 글자는 바로 그 사람을 그리면 되었다. 당시의 그림문자 수는 1500개 정도 된다. 그러나 그림글자는 인간의 사상과 감정이 실린 모든 말을 정확히 다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등장한 시스템이 바로 '레부스(Rebus)' 체계다. 레부스란 그림글자에서 의미를 제외시키고 음가가 가져오는 체계다.

예를 들어 인류 최초의 수메르어 문자에서 '집'이란 의미의 단어표기는 '에(E)'이다. 이 글자는 집 모양을 그린 것이다.

그렇다면 '집에서'는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수메르어로 '집에서'는 '에ㆍ아'다. 여기서 전치사 '-에서'라는 음가는 '아(A)'인데,이 전치사에 해당하는 수메르어 그림글자는 없다.

기원전 2600년께 쿠심(Kusim)이란 무명의 천재가 등장한다. 쿠심은 '-에서'에 해당하는 음가 '아(A)'를 위해 동음이의어인 '물'을 의미하는 '아(A)'를 차용하였다.

그래서 그림글자로는 '집(E)'과 '물(A)'을 그려놓고, '집ㆍ물'이 아닌 '집에서'라는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레부스'체계의 등장으로 그림글자 수는 600개 정도로 줄어들고, 소위 '음절문자'가 등장했다. '음절문자'를 읽고 쓸 줄 아는 사람들은 극소수였다.

이들은 통치자들과 결탁해 절대권력을 행사했고 카스트 제도는 더욱더 확고하게 굳어졌다. 기원전 2600년 이집트에서는 계단식 피라미드가 등장하고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수메르 초기왕조시대가 시작되어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국가 형태가 고착되기 시작했다.

기원전 2000년에 들어서면서 중동지방은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기존 계급제도에 적응하지 못한 유목민들이 메소포타미아,힛타이트,팔레스티나,그리고 이집트 지역까지 자신들이 거주할 영토를 찾아 배회하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후대 유대교,그리스도교,그리고 이슬람교의 조상이 된 아브라함이다.

아브라함은 원래 이라크 남부 우르 출신이었으나,고향을 버리고 시리아지역 하란을 거쳐 팔레스티나와 이집트까지 이주했다. 아직 민족을 이루지 못한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당시 팔레스티나 지역까지 지배하던 고대 이집트 사회에서 하위계층에 속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아브라함의 자손 셈족 사람들에 의해 기원전 1800년께부터 이전의 음절문자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문자체계가 등장한다.

1905년 시나이반도에 위치한 세라비트 엘-카뎀에서 조그만 스핑크스가 발견되었다. 이 스핑크스를 발견한 사람은 영국 고고학자 플린더스 페트리 경으로 그는 고대 이집트의 터키석 광산을 발굴하고 있었다.

페트리는 이 스핑크스를 이집트 18왕조,기원전 1500년께로 추정했지만, 현대 학자들은 기원전 1800년께로 추정한다.

이 스핑크스의 한쪽에는 이집트 성각문자로 '터키석의 여주인인 하쏘르 여신의 사랑 받는 자'라고 쓰여 있었다.

그런데 다른 한편엔 처음 보는 이상한 문자가 쓰여 있었다. 페트리는 이 문자를 최초의 '알파벳'으로 추정했다. 30개 이하의 글자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페트리는 당시 고대 이집트인들이 가나안지역(현재의 이스라엘과 레바논)에서 온 사람들,즉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노예로 부렸다는 사실에 주목해 이 문자를 현대의 히브리어나 아랍어가 속한 '셈족어'라고 추정했다.

그림글자를 그려놓고 그 그림에 대한 셈족어 발음의 첫 자음을 그 글자의 발음으로 표시하는 체계가 바로 알파벳의 기원이다.

예를 들어 셈족어로 '집'은 베이트 (beit)인데, 집을 그려놓으면 알파벳은 첫 자음 b로 읽는다. 가디너는 이런 법칙을 기초로 하여 스핑크스에 있는 낯선 문자가 히브리어로 '여주인을 위하여'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문자의 발명이 인류를 역사 이전의 시대에서 역사시대로 이끌고 문명을 가져다주었다면,알파벳의 발명은 문자를 독점한 소수에 의해 권력이 독점되는 시대에서 '이론상으로는' 모든 사람들이 마음만 먹으면 읽고 쓸 수 있는 '민주주의'로 이행 기반을 마련했다. 이러한 알파벳 체계는 로마의 라틴어를 거쳐 유럽으로 퍼져,모든 유럽어의 문자 체계가 되었다.

이러한 알파벳 체계가 로마의 라틴어를 거쳐 유럽으로 퍼져, 모든 유럽어의 문자 체계가 되었고, 이 알파벳이란 하드웨어 시스템 안에서 15세기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할 수 있었다.

알파벳의 특징은 이전 오리엔트 문자들인 이집트 성각문자나 메소포타미아 쐐기문자에 비해 간결ㆍ명료하다는 것이다.

간결하기 때문에 소통을 보다 명료하게 해주는 알파벳은 인류 최초 문명인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가 창조해 낸 최고의 문화상품이다. 오늘날 현대문명,특히 서양문명에 알파벳이라는 하드웨어가 없었더라면 인류 발전 속도는 훨씬 늦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