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브런치'가 유행하면서 휴일엔 친구들과 이태원,홍대 등에서 팬케이크와 샐러드를 먹는 게 나름의 주말나들이였다.

하지만 그것도 피곤할 때가 있다. 레스토랑엔 주말이랍시고 여기저기서 패션감각을 뽐내는 사람들이 많을텐데 그들처럼 꾸미고 나가기가 귀찮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입으려니 그건 더 싫다. 이도저도 하지 못하고 TV에서 오락 프로그램의 재방송을 보고 있는데 패널들이 직접 잡은 생선으로 회를 뜨고 있다.

침이 꼴깍 넘어가면서 인천 소래포구가 생각났다. 어시장 바닥의 질퍽한 흙탕물과 이러저리 튀는 매운탕 국물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이(?) 편한 옷을 입고 가는 수밖에 없다.

벌떡 일어나 옷장에서 허름한 점퍼를 꺼냈다. 빨기 직전의 청바지를 찾아입고 모자를 아무렇게나 눌러 쓴 다음 혼자 방안에서 뒹굴고 있을 두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어차피 할일도 없을텐데 조개나 구워먹으러 가자고 했다.

소래포구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3시.느지막이 일어나 아침도 대충 때운 탓에 배가 쓰리도록 고프다. 맛있는 냄새가 여기저기서 난다.

새우튀김도 있고,호떡도 보인다. 당장 사먹고 싶지만 강한 의지로 참는다. 조개구이 집이 앞에 있는데 괜히 다른 걸로 배를 채우면 안 된다.

안으로 들어가니 손님들이 북적댄다. 여기저기서 조개가 펑펑 튀며 맛있게 익고 있다. 셋이서 소(小)자를 시켰다. 가격은 2만5000원.옆 테이블에서도 여대생 네 명이 소자를 나눠먹고 있다.

아주머니가 가져온 조개 바구니에는 키조개,꼬막,홍합 등이 가득하다. 곧 꼬막과 키조개가 불 위에서 지글거렸다. 관자살은 직접 잘라 익혔다. 굴은 특유의 비릿하면서도 고소한 바다냄새를 풍기며 군침을 돌게 한다.

아직 해가 중천이지만 소주를 시키지 않을 수 없다. 서비스로 나온 홍합탕 국물과 조개를 번갈아 먹으며 소주잔을 기울였다. 바지락 칼국수도 맛있어 보였지만 다른 가게에서 회를 맛보고 싶어 참았다.

조개구이 집에서 나오니 오후 5시.포구 위 하늘이 옅은 노을로 물들기 시작했다. 어시장 안으로 들어가니 노량진 수산시장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소래포구가 좀 더 작고 정겹다. 좁은 길 양옆으로 다닥다닥 붙은 횟집에서 아주머니들이 손님을 붙잡는다. 친절하게 말을 붙이다가도 술 취한 손님들이 헛수작이라도 걸면 불호령을 내리는 카리스마(?)가 인상적이다.

소래포구에서는 흥정해서 직접 회를 뜬 다음 일명 '초장집'에 들어가 먹을 수 있다. 초장집은 매운탕과 술값,밥값만 받고 회는 자기가 고른 것을 들고가 먹을 수 있다.

대부분의 횟집 2층에 초장집이 있기 때문에 회를 뜬 다음 받은 번호표를 초장집에 주면 15분 정도 뒤에 자기 자리로 배달해 준다.

본격적으로 횟감을 고르기 시작했다. 너무 종류가 많다 보니 역시 아는 걸로 먹는 게 가장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광어와 우럭을 찍으니 둘 다 1㎏에 2만원,농어는 1㎏에 2만5000원이다.

한 5분 동안 실랑이를 벌였지만 주인 아주머니가 좀처럼 양보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배짱을 한 번 부렸다.

"조개구이도 먹을 건데 회는 사지 말자."

아주머니가 갑자기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2㎏도 넘는 농어를 3만원까지 깎아줄테니 우럭까지 더해서 4만원에 사가라고 한다.

세 사람이 먹기에 너무 많다 싶었지만 지금 아니면 언제 배부르게 회를 먹겠느냐는 생각에 모두 받아들고 초장집으로 올라갔다.

이제 노을이 제대로 붉게 익었다. 회를 상에 펼쳐놓고 매운탕을 미리 주문했다. 젓가락을 드는 순간 옆자리로 산더미같은 대게와 대하가 배달된다.

너무 맛있어 보여 순간 실수했다는 생각까지 든다. 구차함을 무릅쓰고 얼마에 샀느냐고 물었다.

1㎏에 대게는 2만2000원,대하는 1만8000원이란다. 물어보는 모양새가 불쌍했던지 게다리와 대하 몇개를 얹어서 준다.

걷기가 힘들 정도로 배불리 먹고 나오니 오후 7시다. 소화도 시킬겸 시장 주변을 둘러봤다. 10시 파장 전까지 아직 여유가 있어 손님들도 자리를 떠날 줄 모른다.

시장 밖으로 나가니 돗자리를 깔고 회를 먹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상도 없이 땅바닥에 소주와 회접시를 놓고 왁자지껄 떠들고 있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지나가는 사람의 기분까지 들뜨게 만든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그냥 시장을 나서기가 아쉬워 장을 봤다. 아까 가격을 흥정할 때 너무 매몰차게 말한 것 같아 그 집으로 갔다.

홍합탕은 집에서도 쉽게 끓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1㎏에 3000원을 주고 샀다. 내친 김에 냉동 꽃게도 1㎏에 1만원을 주고 봉투에 담았다. 아주머니가 "뭐 그런 걸 마음에 담아뒀느냐"며 연신 웃는다. 그러면서 건네는 인사가 발걸음을 더욱 가볍게 한다. "언니 잘가~ 담주에 오면 더 깎아줄게!"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


◆가는길

월곶IC에서 나와 소래대교를 이용하거나 제1경인고속도로 서운JC~장수IC~남동구청~소래포구,제2경인고속도로 남동IC~남동소방서4거리~도림초교~소래포구를 이용하면 된다. www.sorae.or.kr

◆소래포구 유래

소래포구는 일제시대 때 천일염 등 수탈을 목적으로 만든 항구다. 수원과 소래를 잇는 협궤열차(궤도 간격이 표준보다 좁은 옛 철도)의 종착지이기도 했지만 협궤열차는 1995년 운행을 중단했다. 협궤열차가 사라진 뒤에도 철길의 흔적은 남아 있다. 철교는 인도교로 바뀌어 관광상품이 됐다. 갯벌천지였던 부근 땅에는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했지만 소래포구 어시장은 드나드는 손님들로 여전히 왁자지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