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성곽 연결된 옛 모습 고스란히 담아

일제에 의해 숭례문이 훼손되기 전인 지금으로부터 100여년전 서울성곽과 연결돼있는 숭례문의 원형을 보여주는 사진 3점이 숭례문 화재 1년을 앞둔 8일 공개됐다.

이 사진들은 1883년 제물포에서 조선 최초의 무역회사인 '세창양행'을 설립한 독일인 에드바르트 마이어의 후손들이 유품으로 간직해온 것들로, 정성길(68)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이 발굴했다.

정 관장은 "숭례문의 원형을 제대로 복원해 보존할 수 있도록 하고자 사진을 공개하는 것"이라며 "숭례문과 연결된 성곽 위치와 형태조차 명확하게 알지 못하는 우리 후손들이 얼마나 무심했던가를 깊이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3점 모두 서울성곽이 연결된 남산쪽에서 숭례문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초점이 맞춰졌다.

이 중 1880년대에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1번)은 안개가 낀 날 촬영한 듯 흐릿한 화면 속에 한 폭의 그림 같이 숭례문의 자태가 드러나 있다.

또 1890년대 초 찍은 것으로 보이는 숭례문 사진(2번)은 숭례문과 연결된 부분의 서울성곽 형태가 적군의 침입을 막아내기 위해 문 주변부의 성곽을 좁게 만든 옹성이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문화재청은 현재 진행 중인 숭례문 복구 때 1907-1909년 일제가 허물어 현재는 경사면 형태(삼각형 모양)로만 남은 좌우측 성곽의 일부도 복원할 예정이어서 이번에 공개된 사진들이 성곽 복원 작업에도 참고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사진의 경우 성곽 안쪽으로 성곽을 따라 들어선 초가집과 지게를 진 사람, 성밖을 내다보는 한복 차림의 어린이 등 당시 사회상도 엿볼 수 있다.

역시 1890년대 초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또 다른 각도의 숭례문 사진(3번)은 무악재 방향과 서대문 성곽을 함께 담고 있다.

한편 정 관장은 성밖 염창교 쪽에서 촬영된, 일제 강점기 숭례문의 아픈 과거를 보여주는 또 한장의 사진(4번)을 함께 공개했다.

이 사진은 숭례문 주변 성곽이 이미 허물어진 뒤인 1910년 전후에 촬영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숭례문 편액 글씨가 희미하게 보이는 가운데 오른편에 감시용 망루가 설치돼있고 숭례문 입구에는 정체가 의심스러운 석등이 세워져 있다.

이와 관련, 정 관장은 "일제가 1937년 백두산에 쇠말뚝을 박고 무속제를 올렸듯이 숭례문에서도 도성의 기운을 막으려고 문 입구에 무속제를 올리기 위한 석등을 세운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일본이 원구단을 철거한 뒤 그 자리에 철도호텔을 세우고 광화문의 위치를 옮겨 자신들이 신궁을 세운 남산을 향하도록 했던 것처럼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왜곡하고 전통 문화를 말살하려 한 또 하나의 사례라는 주장이다.

(서울연합뉴스) 경수현 기자 ev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