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손실 불구 매년 되풀이
단체장들 표의식 "좋은 것이 좋은 것"

농민은 벼 야적 시위를 하고 농협은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이를 수매하는 비경제적인 일이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고 있지만 양측이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우루과이 라운드(UR) 협상이 타결된 1990년대 중반부터 본격화한 농민의 벼 야적 시위는 비료를 비롯한 농자재 가격이 급등한 만큼 농협의 쌀 매입가를 지속적으로 올려야 한다는 기본적인 요구와 함께 한ㆍ미 FTA 협상이나 쌀 직불금 부당수령 등 농업 관련 이슈가 등장하면서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출하기인 11월 초순 시작되는 벼 야적 시위는 3개월가량 찬바람을 맞고 나서 보통 농민단체와 행정기관 등 관계인 사이의 협의를 거쳐 영농기 직전인 2월 초에 농협이 수매하면서 끝을 맺는다.

올해도 이들 기관과 단체는 농민이 쌀값 인상 등을 요구하며 지난해 11월부터 전북도청 광장과 정읍, 김제, 익산시 등 도내 대부분 시·군청에 쌓아둔 40㎏들이 벼 1만여 포대를 도내 미곡종합처리장(RPC)에서 전량 수매키로 했다.

이 같은 '야적 후 수매'는 경제적, 사회적 손실이 크지만 농민이나 행정기관 모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가운데 연례행사처럼 반복되고 있다.

농민들은 "노동자는 파업이나 태업으로 항의하지만 농민은 벼 야적이나 집회의 방법밖에 의사를 전달할 방법이 없지 않으냐"고 주장하고 있고, 행정기관은 "야적을 막으면 농민의 자살이나 행정기관 점거 등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바람직한 방법이 아님을 알면서 수매를 통해 갈등을 풀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장기간에 걸친 야적은 미질의 저하를 가져온다.

겨울철 야외에 쌓아둔 벼는 얼었다 녹기를 거듭하면서 벼에 금이 가는 등의 동해 피해를 보고 잦은 폭설로 수분 함량이 높아질 수밖에 없어 쌀의 질은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농협은 '사태를 원만하게 해결한다'며 일정 기간이 지나면 야적했던 벼를 사주고 있으며 올해 역시 등급 구분없이 시장 가격(1등급 5만2천원)보다 2천 원이나 비싼 포대(40㎏) 당 5만4천 원에 일괄 수매할 계획이다.

야적 벼를 시중의 1등급 가격보다 더 비싼 값에 사들이기로 한 것이다.

이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수매를 떠안은 농협은 이 같은 수매를 거듭할수록 적자가 늘어 농민을 위한 다른 사업의 규모를 축소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특히 일부 사설 RPC는 이미 출하기에 적정량을 수매한 탓에 창고가 부족해 수매한 이 벼를 또다시 야적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또 행정기관의 정문에 장기간 야적된 벼는 미관상으로도 좋지 않을뿐더러 일부는 주차장이나 통행로까지 차지하는 바람에 민원이 되기도 한다.

비바람이나 눈을 맞지 않도록 비닐을 덮는 등 야적 벼를 공무원들이 관리하는 것도 인력 낭비의 요인이 되고 있다.

이처럼 문제점이 많은데도 행정기관이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것은 지자체 차원에서는 근본적인 해결이 어려운데다 표를 의식한 단체장들이 농민들(또는 농민단체)과 대립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전북도 관계자는 "관행적으로 이뤄지는 '벼 야적 후 수매'는 이제 중단돼야 한다"면서 "야적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전북농민회 관계자는 "야적은 파산 상태에 직면한 농민과 농업의 실상을 세상에 알리기 위한 한 수단"이라며 "정부와 지자체가 농업정책을 변화하지 않고 농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한 야적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해 벼 야적시위는 당분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전주연합뉴스) 홍인철 기자 icho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