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 1번지'로 손꼽히는 서울 조계사의 주지 세민 스님(66 · 사진)은 자타가 공인하는 '염불의 달인'이다. 조계종에서 '염불'하면 첫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작년 6월 조계사 주지로 부임해 일제강점기에 왜색풍으로 지어진 대웅전 앞마당 7층석탑을 들어내고 그 자리에 8각10층석탑을 조성 중인 그를 5일 만나봤다. 세민 스님은 일본 유학 중이던 1970년대 중반에 이미 '천수경' 독경 녹음테이프를 내놨다.

'금강경''반야심경''아미타경' 등 세민 스님의 녹음테이프는 여러 종류의 염불 테이프 중 가장 잘 팔리는 베스트셀러다. 절마다 틀어주는 염불소리가 똑같게 느껴지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또 1990년 불교방송 개국과 함께 하루 몇 차례씩 세민 스님의 독경 소리가 전파를 타면서 그의 염불은 젊은 스님들의 기본교재가 됐다. 덕분에 세민 스님은 조계종 큰 행사에 단골로 등장한다. 입적한 고승들의 다비식과 영결법회,중요한 불사(佛事)의 기념법회에선 으레 세민 스님이 염불하는 걸로 돼 있을 정도다.

세민 스님의 염불이 이처럼 호평받는 것은 낭랑하면서도 힘있는 목소리,긴 시간을 염불해도 변하거나 흔들리지 않는 지구력 덕분만이 아니다. 염불과 기도를 수행 방편으로 삼아 혼신의 힘을 다하기 때문이다. 수행자로서 참선도 하고 경도 읽지만 뭇 중생을 천도(遷度)하는 그 자체도 수행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

"지금까지 남을 위해 기도하고 불공 드리고 제사를 지내주며 살았지만 그러한 의식이 남의 것이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참선과 염불,주력(주문) 모두가 수행의 방편이니 염불은 내게 수행입니다. 염불을 하든 참선을 하든 경(經)을 읽든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삿된 마음을 가지면 천도를 해도 소용없어요. "

세민 스님은 매일 새벽 4시부터 아침 공양(식사)까지 2시간30분 동안 직접 기도하고 염불한다. 낮에는 각종 법회를 직접 주관한다. 밤을 새는 철야기도도 자주 한다.

이런 까닭일까. 세민 스님이 주관하는 천도재에는 여느 사찰,여느 스님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몰린다. 해인사 주지 시절엔 49재를 21차례 지내는 '1029일 천도법회'를 열어 8600여 영가(영혼)를 달랬고,그 수입으로 해인사의 만성적 부채를 해결했다.

조계사에 와서도 사찰 운영의 최대 걸림돌인 부채를 해결하기 위해 작년 8월부터 49재를 7차례 지내는'343일 천도법회'를 열고 있다. 이를 통해 지난해에만 조계사의 총 부채 73억여원 중 22억원가량을 해결했다. 조계사가 도량을 정비하면서 주변 땅을 사들이고 건물을 짓느라 진 과중한 부채 해결이 시급한 과제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세민 스님은 "조계사 창건 100주년을 맞는 내년까지 모든 부채를 해결해 제2의 도약을 위한 기틀을 마련할 계획"이라며 "더 나아가 조계사 앞의 모텔 등 일부 건물과 땅을 사들여 지상은 도심 공원과 전통 가람을,지하에는 신자와 관광객을 위한 공간을 조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계사 신도만 2만5000가구,외국인 방문객이 하루 500~600명이나 되지만 쉴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염불 공덕으로 도심 속 전통사찰의 정취를 되살리려는 시도가 주목된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