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억 맡겼으나 소비임치 해당"

노태우 전 대통령이 조카 호준 씨를 상내로 낸 소송에서 또 패소했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비자금 120억원으로 설립된 조카의 회사를 되찾아 미납 추징금을 내기로 했던 터여서 300억원 가까운 미납 추징금이 국고에 환수될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졌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2부(변현철 부장판사)는 4일 노 전 대통령이 호준 씨의 냉동회사 오로라씨에스 이사들의 지위를 박탈해달라고 낸 소송을 각하했다.

재판부는 "쟁점은 노 전 대통령을 회사의 실질적인 주주로 볼 수 있느냐인데 노 전 대통령은 (비자금을 맡긴 것이) 위임 관계임을 주장하지만 법률상 소비임치에 해당해 소송 자격이 없다"고 밝혔다.

소비임치란 어떤 사람이 다른 이에게 돈이나 재산을 맡기는 것 중 하나인데 받은 쪽은 이를 마음대로 써도 되지만 맡긴 사람이 달라고 요구하면 그만큼을 돌려줘야 할 의무가 있다.

달리 말하면, 노 전 대통령이 비자금을 동생이자 호준 씨의 아버지인 재우 씨에게 넘긴 순간 그 돈은 재우 씨의 소유가 되고 이 돈으로 만들어진 오로라씨에스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은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처음 돈을 넘겨준 재우 씨에게 120억원 상당의 재산을 돌려달라고 요구할 권리가 있지만 현실적으로 재우 씨가 이만한 재산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작아 다시 소송을 내 이긴다고 해도 노 전 대통령이 돈을 받을 가능성은 낮다는 게 법조계의 일반적인 관측이다.

앞서 지난달 22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1부는 노 전 대통령이 자신의 비자금으로 세운 오로라씨에스의 실질적 주인임을 주장하며 낸 소송에서도 같은 논리로 패소판결했다.

수원지법도 지난달 9일 노 전 대통령이 호준 씨를 상대로 "회사 부동산을 헐값에 팔아 회사에 입힌 손해 중 28억9천만원을 배상하라"며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각하했다.

따라서 이들 판결이 확정되면 노 전 대통령은 재우 씨를 통해서만 120억원을 돌려받을 수 있어 노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 289억원 중 상당액을 환수하려던 국가의 계획은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검찰은 작년 10월 노 전 대통령의 추징금 12억원을 마지막으로 추가 환수한 것을 포함해 2천628억원의 전체 추징금 가운데 2천339억원을 환수한 상태다.

(서울연합뉴스) 차대운 기자 setuzi@yna.co.kr